그러나 세상의 변화에 맞춘 제품이나 서비스, 새로운 가치를 주는 신상품들은 소비자의 맘을 사로잡았다.
그 키워드는 웰빙(Well-Being)과 정보통신(IT).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웰빙 관련 상품들이 중산층, 고학력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또 카메라폰과 디지털카메라로 상징되는 새로운 IT제품들은 불황 속에서도 젊은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날로 각박해지는 한국을 떠나거나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이민(移民)상품’과 ‘로또’도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 연구원은 “소비가 양극화되면서 중산층 이상에서는 웰빙 관련 상품들이 많이 팔렸지만 전체적으로는 우울한 시대의 특징을 드러내는 히트상품이 많았다”며 “올해 히트상품의 특징은 우울한 ‘鬱(울)’자로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계속될 화두, ‘웰빙’=웰빙과 관련된 가장 뚜렷한 흐름은 식품류에서 나타났다. 값은 비싸더라도 믿을 수 있는 농산물을 찾는 주부들이 늘어나면서 각 백화점의 유기농코너 매출이 2배 이상 커졌다. 유기농산물만을 파는 한살림은 서울지역 주부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식품회사들도 이런 흐름에 편승해 검은콩우유, 천연 효모빵, 오징어 먹물식품, 선식 등 건강을 생각하는 상품들을 내놔 재미를 봤다. 특히 검은콩 우유는 기존의 우유보다 2배 이상 팔려 우유를 대표하는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건강을 생각하는 음주문화가 확산되면서 와인을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추석 명절선물로 와인이 사상 처음으로 양주를 제치고 1위로 떠올랐다. 전체적으로는 와인매출이 작년에 비해 50% 이상 늘었다.
정신적인 건강도 중요시하는 웰빙의 흐름은 요가와 사교댄스 열풍도 가져왔다. 각 백화점의 문화센터는 요즘 요가와 사교댄스를 배우려는 주부들로 넘쳐났다. 서울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요가와 사교댄스 전문학원도 생겨나고 있다.
▽히트상품의 보고 IT=디지털 카메라와 카메라폰의 등장은 디지털시대의 중심이 더는 PC가 아님을 확인시켰다.
디지털 카메라와 카메라폰의 보급은 ‘얼짱’과 ‘딸녀’ 신드롬을 낳을 정도로 젊은층의 문화를 바꿔 놓고 있다. 요즘 팔리는 휴대전화의 절반이상은 카메라폰. 또 인터넷에서 수능이나 어학교육을 제공하는 e러닝이 본격화되면서 메가스터디와 YBM시사닷컴이 대박을 터뜨렸다. 수능 강의를 인터넷으로 제공하는 메가스터디의 경우 회원만 52만명에 이르고 연매출이 480억원에 이를 정도.
▽주5일 근무시대의 인기상품=올해 자동차 내수는 극도의 침체를 보였지만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잘 팔렸다. 올해 들어 11월 말 현재 SUV는 26만2885대가 팔려 중형승용차를(19만9228대)를 압도했다. 주 5일제 근무를 도입한 회사가 늘어나면서 운전자들이 직장 출퇴근 및 여가용으로 SUV를 선호하기 때문.
주말에 콘도나 호텔보다는 자연친화적인 곳에서 머물기를 원하는 사람이 늘면서 펜션이 인기를 끌고 있다. 강원 평창군 일대에는 펜션이 작년보다 3배가량 늘어 6000개에 이를 정도. 펜션 창업은 노후를 자연에서 보내면서 일정 소득을 유지하려는 퇴직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우울한 시대의 인기상품=8월 말 현대홈쇼핑은 이민상품을 175억원어치 판매해 홈쇼핑 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 곧이어 열린 이민상품 박람회에는 1만8000여명이 몰려들었다. 조국에서의 삶이 각박해지면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로또를 앞다투어 구입하면서 연간매출(2002년 12월∼2003년 11월)이 정부가 예상했던 액수의 10배나 되는 3조6000억원을 기록했고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됐다.
회사를 떠나는 연령이 ‘삼팔선’까지 내려오면서 최근 홈쇼핑에는 창업을 도와주는 상품에 신청자가 몰리고 있다.
또 휴일을 적은 비용으로 즐기려는 사람이 늘면서 등산용품의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40%이상 올랐다.
내수불황은 오래 입을 수 있는 청바지를 히트상품의 반열에 올렸다.
또 올 한 해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와 주상복합 아파트에 돈이 몰리면서 서민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했다. 분양권 전매가 가능한 마지막 상품으로 10월 말 분양된 서울 광진구 노유동의 광진트라팰리스의 청약경쟁률이 190 대 1을 기록했다.
이병기기자 eye@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