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한양대 석좌교수된 물리학자 노만규

  • 입력 2004년 3월 23일 19시 29분


한양대 석좌교수로 초빙된 세계적 핵물리학자 노만규 박사는 “기초과학 육성은 당장의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하지만 장기적인 국가전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훈구기자
한양대 석좌교수로 초빙된 세계적 핵물리학자 노만규 박사는 “기초과학 육성은 당장의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지 못하지만 장기적인 국가전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훈구기자
“우리 젊은 연구자들의 두뇌에 대해서는 자부심을 가질 만합니다. 문제는 그들을 이끌어갈 ‘기관차’ 역할의 인물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내 역할이 그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한양대 석좌교수로 임용된 핵물리학자 노만규 박사(68). 그는 노벨상이 발표되는 계절마다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 중 1명으로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1965년부터 39년째 프랑스 원자력청 샤클레 기초과학연구원에서 근무해 온 그는 91년 제럴드 브라운 뉴욕주립대 석좌교수와 함께 ‘브라운-노(Brown-Rho)’ 이론을 발표해 이론핵물리학계의 대표적 인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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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노’ 이론이란 빅뱅(Big Bang) 직후의 초고온 초고압 환경에서 입자들이 띠게 되는 성질을 규명한 이론. 이 이론을 적용하면 초신성이 폭발할 때 생성되는 중성자 별 내부의 상태 변화도 예측할 수 있어 천체물리학계에서도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는 원래 과학도 지망생은 아니었다. 경남 함양에서 8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경기고를 졸업하고 대학은 문과(서울대 정치학과) 계열로 진학했던 것. 하지만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그는 대학 입학 직후부터 유학 준비에 들어가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다. ‘별 생각 없이’ 클라크대학을 선택했는데 그것이 그를 과학자의 길로 이끈 계기가 됐다.

“클라크대학에 가보고서야 이 학교가 자연과학으로 유명한 학교라는 걸 알게 됐어요. 고교 때 ‘수물화(수학 물리 화학)’를 잘했으니까 그쪽으로 승부를 걸어보자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넉넉지 않은 집안사정을 생각해 의사가 되려고 의예과에 다녔지만 학비 부담이 커 화학과로 바꾸었다. 학부 졸업 후에는 ‘물리학 쪽이 적성에 맞는 것 같다’는 주위의 권고로 64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대학원 물리학과에 들어갔다. 이듬해 우연한 계기에 프랑스 원자력청에 파견 연구를 간 것이 또 한번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불문학을 공부하러 와 있던 아내(독일인)를 만났죠. 나와 함께 미국에 가자고 했더니 싫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눌러앉게 됐죠.”

다행히 샤클레 연구소의 연구 환경은 만족스러웠다. 대학 부설기관이 아니어서 강의 부담도 없었고 자유롭게 인접국을 다니며 최신 연구동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 70년대 당시 새로이 등장하고 있던 양자색소역학(QCD)을 핵물리학에 적용시킨 그의 연구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했다. 30여년간 발표한 그의 논문 200여편은 각국의 연구자들에 의해 세계적인 학술논문에 3000회 이상 인용돼 왔다.

그에게 한국의 과학분야 노벨상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았다.

“노벨상을 목표로 설정하고 돌진한다는 식의 접근으로는 노벨상이 나올 수 없습니다. 전체적인 연구의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노력하다보면 예상치 못한 사이에 노벨상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새 직함을 얻었지만 프랑스에서의 일이 끝난 것은 아니다. 현재도 샤클레 연구소 ‘자문위원(Scientific Advisor)’으로서 능력과 열의가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연구생활을 계속할 수 있다. 한국에는 1년에 4개월 정도 체류한다.

그는 한국에서의 연구활동을 ‘협력’이라고 표현했다. “맞습니다. 협력입니다. 저로서는 축적한 지식을 전달하지만 한국의 젊은 연구자들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으니 저로서도 큰 힘이 됩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기자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가 64년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대학원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고생한다는 사연이 국내 한 신문에 보도됐다. 어느 날 작은 ‘성금’이 도착했다. 초등학교 1학년생 어린이가 돼지저금통을 깨서 보내온 것이었다. 1990년 방한 길에 한 신문의 주선으로 당시의 주인공을 만났지만 그 후 다시 연락이 끊어졌다.

“99년 학술원상을 받을 때 그분의 거처를 수소문했으나 찾을 수 없더군요. 이 기사를 보면 꼭 연락 주기 바랍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학자의 눈이 촉촉했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노만규 박사는

△1936 경남 함양 출생

△1960 미국 클라크대 화학과 졸업

△1964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물리학 박사

△1965∼현재 프랑스 원자력청 기초과학연구원 재직

△1985 프랑스 물리학회상

△1991 고온·고밀도 환경에서 강입자의 특성을 예측한 ‘브라운-노’ 이론 발표

△1995 독일 훔볼트상

△1997 국민훈장 석류장

△2002 호암상

△2004 KBS 해외동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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