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의 건강파일]<6>야구 해설가 하일성씨

  • 입력 2004년 4월 11일 17시 19분


야구해설가 하일성씨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 30분 이상 걷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하씨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석촌호수 주변을 걷고 있다.권주훈기자 kjh@donga.com
야구해설가 하일성씨는 아무리 바빠도 하루 30분 이상 걷기를 빠뜨리지 않는다. 하씨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석촌호수 주변을 걷고 있다.권주훈기자 kjh@donga.com
《프로야구에 해설이 없다면? 아마 ‘속없는 찐빵’처럼 민숭민숭할 것이다. 그래서 야구해설가 하일성씨(55)의 존재감은 크다. ‘하구라’란 별명에 걸맞게 해설은 톡톡 튀고 즐겁다. 그는 늘 밝다. 그러나 이면에는 병마와 싸웠던 아픈 기억이 숨어있다. 그의 사례는 한국 중년 남성이 직면한 건강의 위험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타산지석(他山之石). 그는 경각심이 필요하다며 기자에게 지난날을 숨김없이 털어놨다. 》

○자만이 부른 ‘병의 추억’

2002년 1월 23일 새벽. 가슴이 답답해 잠에서 깼다. 왼팔도 저렸다. 오전 3시까지 마신 술 때문일까. 아니면 담(痰)인가. 담배를 두 개비 거푸 피웠다. 기분이 좀 좋아졌다.

같은 날 오후 1시50분경. 방송 녹화를 10분 앞두고 다시 왼팔이 저리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졌다. 가까운 대학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진단. “큰일 날 뻔했어요. 빨리 수술을 합시다.”

심근경색. 3개의 심장혈관 중 2개가 막혀 있었다. 자칫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7일 뒤 다시 2차 수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그 후 3개월간의 입원생활이 이어졌다.

병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었다. 우울증이 엄습했다. 멍하니 정신을 빼놓기 일쑤였다. 수술 후 얼마동안은 밥도 먹지 못했다. 넘어져 뇌진탕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래도 아내의 소중함을 깨달은 것은 투병하면서 얻은 성과다. 29년을 함께 살면서 남편의 강한 모습만 봐 왔던 아내. 충격이 컸던 탓에 남편의 수술 도중 실신하기도 했다. 아내는 그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간호했다.

심근경색의 충격에서 벗어난 지 2년 정도 됐을까. 올해 2월 4일. 다시 병의 습격을 받았다.

건강검진 때였다. 복부초음파 촬영 결과 위장 바깥쪽에 4.5cm 크기의 종양이 발견됐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또…. 괜스레 검사를 하던 사람에게 화를 냈다. 지면을 통해서라도 그에게 사과하고 싶다.

다시 입원해 내시경과 조직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악성종양은 아니었다. 위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에 생긴 종양이라 재발 가능성도 낮단다. 종양은 쉽게 제거됐다.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매일 담배 3갑과 매주 5회 이상 술자리는 기본. 술은 마셨다 하면 오전 3, 4시까지는 가야 직성이 풀렸다. 그러면서도 호기를 부렸다. “대한민국에 나보다 건강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그러다 덜컥 쓰러졌다. 호기는 사라졌다. 먼저 담배를 끊었다. 다행히 담당 의사가 술은 어느 정도 괜찮단다. 매주 3회 정도 소주 1병씩 먹었다. 그러나 얼마 전 종양 제거 수술을 받은 뒤 의사는 술을 금했다. 결국 작심하고 술까지 끊었다.

그는 요즘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명언을 곱씹는다. 더 이상 자신의 건강을 자랑하지도 과신하지도 않는다. 담당 의사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도 달라진 태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해요. 저도 그랬죠. 저를 포함해 모두 바보입니다. 몸이 상하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하고…. 1년에 한번은 반드시 건강검진을 받도록 하세요.”

그는 요즘 생전 해보지 않던 운동이란 것을 하고 있다. 맨손체조와 완보(緩步)가 그것이다. 그는 매일 서울 송파구 집 근처 석촌호수를 따라 2km 정도 쉬지 않고 30∼40분간 걷는다. 시속 5∼5.5km 정도로 비교적 느린 걸음걸이다.

심장에 부담을 안 주려고 속도를 늦췄지만 그래도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묵은 때를 벗겨낸 듯 몸이 개운해진단다. 그래서인가. 걷기에 푹 빠졌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왜 걷기를 선택했을까.

“주변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을 골라야 합니다. 그래야 하루도 쉬지 않고 할 수 있죠. 저는 걷기를 고른 겁니다. 죽을 때까지 걷고 또 걸을 겁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하일성씨의 투병 메시지▼

야구해설가 하일성씨가 심근경색 수술을 받고 입원했을 때 집안은 시쳇말로 ‘초상집’이었다.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도 웃는 사람은 없었다. 신경은 날카롭게 곤두서 있었다.

그는 3개월에 불과한 투병생활을 거론하는 게 장기 투병 중인 가족에게 되레 오만하게 비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힘이 될 것이라는 기자의 격려에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는 무엇보다 환자 자신의 의지를 강조했다. 다만 병을 이기려고 무리하게 ‘투쟁’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좋지 않을 수도 있단다.

“병과 타협하세요. 단번에 낫겠다고 싸우면 상당히 버겁습니다. 새로 생긴 친구다…. 이쯤 생각하세요.”

그렇다고 나약해지란 얘기는 아니다. 잡다한 생각을 버리고 완쾌되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5∼10년 후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청사진을 세우는 것도 좋다고 한다.

그는 “환자의 완치를 위해서는 가족의 평상심 유지가 필수적이다”고 말했다. 환자가 발생하면 가족들은 대부분 예민해진다. 그렇지만 이 경우 환자들에겐 오히려 부담이 된다. 차라리 평소보다 대화를 많이 하고 건강이 좋아진 뒤 여행일정을 함께 논의하는 게 바람직하다.

친구나 동료의 배려는 환자에게 큰 힘이 된다. 그러나 그는 무턱대고 “푹 쉬어라”는 식의 배려는 환자를 낙담케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근경색으로 입원했을 때다. 당시 프로야구 개막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러나 방송국에서는 “하씨는 일을 하지 않으면 병이 낫지 않을 사람”이라며 그를 기다렸다. 그는 아직도 그때의 배려를 잊을 수 없다. 결국 성격에 맞춘 배려가 진정 환자를 위한다는 얘기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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