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의 수학 알아보면…다수결방식 비과학적 요소 많다

  • 입력 2004년 4월 11일 17시 49분


《국민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투표 하면 으레 우리는 다수결을 떠올린다. 여러 명의 후보 가운데 딱 한 명에게 표를 던져 최다 득표자가 당선되는 제도가 ‘단순다수결’이다. 그러나 단순다수결은 불완전한 투표 방법이라는 비판이 일면서 투표에도 개혁의 바람이 일고 있다. 여기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사람들이 수학자와 통계학자들이다. 이미 프랑스혁명 직후부터 콩도르세, 보다 등 수학자들은 단순다수결에 대한 대안으로 찬성투표, 선호투표, 점수투표, 결선투표를 제안해 왔다.》

단순다수결의 큰 문제점은 다수가 싫어하는 후보가 과반수에 훨씬 못 미치는 지지율로 당선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후보가 난립할수록 이해관계로 똘똘 뭉친 특정집단이 낸 후보가 유리하다. 영남과 호남의 맹주였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씨가 36∼42%의 득표율로 당선돼 사회 갈등을 야기한 것은 본질적으로 단순다수결에 기인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대 수학자 도널드 사리 교수는 6명의 후보가 나왔을 경우 계산한 결과 단순다수결에 의해 다수가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가장 정밀한 투표 방식인 점수투표보다 10의 50제곱배나 높았다.

서울대 통계학과 박상현 교수는 “찬성투표, 선호투표에서는 단순다수결처럼 특정 계층이나 집단의 지지만으로 당선되기 어렵고 전체적으로 골고루 지지를 받아야 당선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상대의 표를 깎아 반사이익을 얻는 것보다 대다수 유권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선거운동을 벌이게 되므로 네거티브 캠페인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찬성하는 사람이 없어서, 또는 찍어봐야 사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줄어 투표참여도가 높아진다.

국내에서도 민주당에 이어 열린우리당이 올해 당내 경선에서 ‘선호투표’를 도입했다. 하버드대 웨어 교수가 주창한 선호투표는 호주의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쓰이고 있다.

선호투표는 좋아하는 후보의 순위를 매기는 투표방식이다. 4명의 후보가 나올 경우 1순위에서 과반수가 나오면 후보가 확정되고 개표가 끝난다. 하지만 1순위에서 과반수가 나오지 않을 경우 최하위 득표자를 일단 탈락시키면서 그가 받은 2순위 지지표를 각각 1, 2, 3위 득표자에게 나눠준다. 이렇게 과반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집계를 반복하는 방식이다.

점수투표는 선호투표와 비슷하지만 한번의 집계로 결판이 난다. 점수투표는 4명의 후보가 있을 경우 가장 마음에 드는 후보에게 4점, 두 번째 후보에게 3점, 세 번째 후보에게 2점, 네 번째 후보에게 1점처럼 주는 방식이다. 점수를 합산했을 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후보가 당선된다. 점수투표나 선호투표는 집계가 복잡해 대선, 총선에는 바로 시행하기 어렵지만 앞으로 전자 투표가 도입되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요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결선투표로 학급 반장을 뽑는 곳이 꽤 많다. 여러 후보가 난립하기 때문에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경우가 빈번하다. 그래서 1, 2위 득표자를 놓고 다시 한번 투표를 하는 것이다.

프랑스 러시아에서는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를 도입하고 있다. 결선투표가 도입됐다면 노무현 정몽준 후보가 여론조사 결과로 후보를 단일화하고 투표 전날 지지를 철회하는 혼란은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유엔사무총장은 찬성투표로 뽑는다. 유엔 회원국은 두 명이든 세 명이든 마음에 드는 모든 사무총장 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다. 미국의 수학회, 경영과학회, 통계협회, 32만명의 회원을 지닌 전기전자공학회(IEEE)는 1980년대 후반부터 찬성투표로 회장을 뽑고 있다. 미국과학아카데미도 신입 회원 선정 때 찬성투표를 한다. 찬성투표는 유권자 한 명에게 하나의 투표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후보자에게 하나의 투표권을 주는 것이다.

서울대 총장 선거는 두 명의 후보에게 찬성표를 던진다. 한 명만 찍도록 할 경우 교수 숫자가 많은 의대와 공대가 총장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표 방법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신동호 동아사이언스기자 do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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