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태어난 최초의 복제양 돌리는 아빠는 없고 엄마만 둘이었다. 한 엄마는 젖샘세포를 제공했다. 또 다른 엄마는 유전자를 담은 핵을 제거한 채 ‘비어있는’ 난자를 준비했다. 이 둘을 결합시키자 마치 정자와 난자가 만난 것처럼 수정란이 분열되고 돌리가 태어났다.
하지만 복제생명체는 굳이 엄마가 둘일 필요가 없다. 여성 한 명이 몸에서 세포를 하나 떼어내고, 자신의 난자에서 핵을 제거하면 준비가 끝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2월 세계 최초로 복제된 인간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한 서울대 황우석 문신용 교수팀의 실험에서 동일한 여성으로부터 얻은 세포(난구세포)와 난자가 사용됐다. 이때 얻은 배아를 이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키면 복제인간이 탄생하는 것. 자식은 당연히 여성이다.
○후천적 질병 규명에 청신호
당시 황 교수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경우만이 진정한 생명체”라며 “복제인간은 절대 반대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22일에는 영국의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정자가 필요 없이 여성의 난자 둘만으로 생명체를 탄생시킨 내용이 게재돼 큰 충격을 던졌다. 일본 도쿄대 농대 고노 도모히로 교수팀과 서울대 의대 서정선 교수팀이 공동으로 진행한 이 실험에서는 생쥐 두 마리로부터 얻은 난자가 동원됐다.
먼저 한 생쥐로부터 난자가 만들어지기 이전의 미성숙한 난모세포를 얻었다. 여기에서 마치 정자처럼 보이게끔 특정 유전자의 기능을 제거했다. 이 난모세포를 성숙시켜 정상 난자와 결합시키자 놀랍게도 수정란이 만들어졌다. ‘무늬만’ 난자였지 정자 역할을 제대로 해낸 것이다. 한쪽 성(性)만으로 생명체가 탄생했다고 해서 단성생식(처녀생식, 단위생식)이라 불리는 현상이다. 자연계에서는 일부 곤충과 어류에서 관찰되지만 생쥐 같은 포유류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마리아병원 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은 “생명공학계에서 복제에 버금가는 획기적인 대사건”이라며 이 논문을 평했다.
난자를 정자로 둔갑시킨 비밀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아빠와 엄마로부터 유전자를 절반씩 얻지만, 이들이 모두 기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태아의 성장을 조절하는 유전자(H19)는 부모 각각으로부터 물려받지만 어쩐 일인지 엄마(난자) 유전자만 활동하고 아빠(정자) 유전자는 봉인돼 있다. 이 봉인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을 유전학에서는 ‘각인(implinting)’이라고 부른다. 내 유전자에 아빠 것, 엄마 것이 각인돼 있다고 해서 붙인 표현이다.
연구팀은 난모세포에서 H19의 기능을 제거했다. 이를 성숙시키면 겉은 난자이지만 최소한 H19를 보면 정자인 셈.
서정선 교수는 “생쥐 암컷 한 마리에서 얻은 두 개의 난자로도 성공시킬 수 있는 실험”이라며 “사람으로 치면 여성이 혼자서 여자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 교수는 “좀더 큰 의의는 유전자의 각인에 대한 궁금증이 본격적으로 해소되기 시작해 암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이 제시된 점”이라고 설명했다. 암을 비롯한 각종 후천적 불치병 원인의 하나는 바로 각인이 어느 순간 사라져 유전자의 기능이 제멋대로 뒤바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전자 각인의 원인을 잘 밝히면 치료제 개발에 도움을 줄 것이 자명하다.
○기술적 한계 아직 많이 남아
난자를 생산하지 못하는 불임여성은 어떨까. 이론적으로는 방법이 있다. 몸의 모든 장기로 자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줄기세포(stem cell)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5월 미국의 과학전문지 ‘사이언스’에 놀라운 논문이 게재됐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한스 슐러 박사팀이 생쥐의 배아에서 얻은 줄기세포에 특정 유전자를 주입시켜 난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난자를 특수 배양액에서 키워 수정 후 4∼5일 단계의 배아로 둔갑시켰다.
상상력을 발휘해 이 실험과 22일 ‘네이처’에 발표된 결과를 결합시켜 사람에게 적용해보자. 불임여성이 자신의 줄기세포로부터 난자와 배아를 만드는 것은 물론 여자아이를 태어나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기술적 한계가 많이 남아있지만 생명공학은 분명 현대판 아마조네스가 얼마든지 등장할 수 있다고 예고하고 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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