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매 필요없고 전기 절약…‘물 에어컨’시대 온다

  • 입력 2004년 7월 6일 18시 19분


사막에서 얼음을 만드는 비결은? 중동지방에 전해오는 문헌에 따르면 공기가 통하는 토기와 물만 있으면 OK. 토기에 물을 넣고 바람이 잘 통하는 서늘한 곳에 둔다. 이때 물이 토기를 통해 조금씩 스며 나와 증발이 일어나고 토기 안의 물은 차가워지다가 결국 얼게 된다.

왜 그럴까? 물이 수증기로 바뀌는 증발 과정에서 주위 열기를 빼앗기 때문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마당에 물을 뿌리면 시원해지는 것도 같은 원리다. 사막처럼 건조한 지역에서는 단순히 물을 뿌리는 효과로 40도를 넘나드는 기온이 10도까지 낮아진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열·유동제어연구센터 이대영 박사팀이 건조한 사막과 달리 고온다습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물 에어컨’을 한창 개발하고 있다. 기존 에어컨처럼 냉매를 압축하는 압축기나 건물 밖에 설치되는 실외기가 필요 없다. 또 오존층을 파괴하는 프레온가스 냉매가 아니라 물로 작동하는 ‘환경친화형’ 에어컨이다. 이 박사는 “2005년 말경 가정용 물 에어컨이 상용화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물 에어컨은 기존 에어컨에 비해 전기 소비가 적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 박사팀이 개발한 시제품에서 전기가 드는 부품은 2대의 선풍기와 1대의 모터뿐이다. “기존 에어컨에 소요되는 전기의 5분의 1이면 충분하다”고 이 박사는 설명했다.

원리는 물이 증발함으로써 주변 공기를 차게 만드는 것이다. 축축하고 더운 공기가 습기 제거 장치를 거치면 건조해진다. 이 건조 공기가 물이 뿌려진 그물망을 통과하면 물이 증발하면서 주변 공기를 냉각시키고 차가워진 공기가 실내에 공급된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대영 박사(오른쪽)가 개발한 ‘한국형 물 에어컨’을 시험 운전하는 모습. 올해 말에는 습기 제거 장치가 없는 에어컨이, 내년 말에는 습기 제거 장치가 포함된 에어컨이 상품화될 예정이다.-사진제공 KIST

연구팀이 개발한 물 에어컨은 습한 외부 공기를 빨아들여 건조한 공기로 탈바꿈시키는 장치도 덧붙였다는 사실이 강점이다.

‘한국형 물 에어컨’의 핵심은 습기 제거 장치에 들어간 습기 제거제. 이 박사는 “종이기저귀에 쓰이는 고분자물질(SAP)이 액체를 잘 흡수한다는 점에 착안한 후 SAP의 구조를 변화시켜 공기 중의 습기를 잘 빨아들이는 습기 제거제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 습기 제거제는 실리카겔 같은 기존 재료보다 3∼4배 성능이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습기 제거 장치가 회전하면서 습기를 한껏 머금은 제거제가 다른 쪽에서 마를 수 있게 돼 있다. 이 박사는 “습기 제거제를 말리는 데는 80도 이하에서도 가능해 지역난방에서 공급되는 온수나 공장에서 버려지는 폐열을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1차로 습기 제거 장치가 없는 간단한 에어컨을 실험했다. 물이 증발하면서 공기를 냉각시키는 효과만 고려된 것이다. 실험 결과 6월에서 9월 사이의 날씨에서 4일을 제외하고 에어컨에서 나오는 공기의 온도는 25도 이하로 나타났다.

여기에 습기 제거 장치가 포함된 시제품은 성능이 더 좋다. 물 에어컨에서 나오는 공기의 평균 온도가 25도보다 더 낮아질 수 있어 성능이 기존 에어컨과 다르지 않다. 또 실내공기가 습할 경우 기존 에어컨과 달리 온도를 낮추지 않고 습기만 제거할 수 있다.

한편 최근 국내에서는 압축공기를 갑자기 팽창시켜 온도를 낮추는 방식의 에어컨도 개발되고 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있을 때 엔진에 쓰이는 압축공기 일부를 객실로 빼내 냉방하는 것이 한 예다.

압축방식의 에어컨을 개발 중인 기업 ‘뉴로스’의 박기철 박사는 “열효율이 일반 에어컨의 20%에 불과하지만 영하 40도까지 급속 냉동하는 데 적합해 생체 재료를 보관하기에 좋다”고 말했다.

또 프레온가스를 대체하는 냉매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천연물질을 대체냉매로 연구하는 것은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유럽에서는 프로판 부탄 메탄 등을 냉매로 연구하고 있지만 불에 탈 위험이 있어 문제다.

현재 국내에서는 산업자원부의 지원 하에 대체냉매로 이산화탄소가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KIST의 장영수 박사는 “이산화탄소의 냉방효과를 프레온과 비슷한 정도로 만들려면 압력을 120기압까지 올려야 한다는 점이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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