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써 본 적이 없는 피아노강사 한세미씨(28)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박승옥 연구원(52), 휴대전화를 쓰다가 최근 처분한 울산대학교 예방의학과 강영호 교수(38)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과 ‘접촉’에 성공하기까지는 평균 하루가량 걸렸다.
이들은 유선전화나 e메일 같은 통신수단을 주로 쓰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무실이나 집에 있는 시간을 미리 알려 세상과 소통할 창(窓)은 항상 열어둔다. 그러나 휴대전화처럼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힘들다 보니 본인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 한다.
한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오전 10시 이전이나 오후 8시 이후 집으로 전화하도록 미리 이야기해 두었다. 친구들도 이제 웬만큼 ‘적응’해 약속이 바뀌면 하루 전에 연락을 해 온다. 그러나 친구들은 대부분 휴대전화에 익숙한 ‘골수 M세대’이다 보니 이따금 한씨에게 “너는 휴대전화가 없어 자유롭고 편할지 몰라도 우리는 답답하다”고 투덜거린다.
강 교수는 “휴대전화를 없앤 뒤 사람이 변했다는 책망도 많이 들었다”고 했다. 휴대전화의 커뮤니케이션 속도에서 이탈하는 것이 마치 상대에 대한 결례로 비쳐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본인들도 휴대전화가 아쉬운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씨는 “약속에 늦었거나 약속장소가 붐벼 친구를 찾지 못할 때, 공중전화를 찾으러 한참을 헤매는 게 가장 불편하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차를 타고 가다가 급하게 공중전화를 쓰려고 차를 세웠다가 주차 문제로 핀잔을 들을 때도 많다”고 전했다. 공적인 일에 차질을 빚기도 한다. 강 교수는 제3자에게 전화 메시지를 전달받는 과정에서 착오가 일어나면서 정부의 한 위원회 구성에 참여하지 못하게 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들은 휴대전화가 없어서 생기는 불편함보다는 장점이 훨씬 많다고 말한다. 이들에게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생기는 ‘기다림’은 오히려 여백이다. 때로 사람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는 침묵하고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
이들은 이렇게 번 시간을 통해 메시지의 경중(輕重)과 선후(先後)를 판단하고, 커뮤니케이션의 주도권을 잡는다. 휴대전화는 주도권이 전화를 거는 사람에게 있지만 전화나 e메일의 경우 메시지 응답 여부를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
강 교수는 “무방비 상태로 내 삶이 남에게 개입당하는 일이 없다 보니 내 시간표에 따라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
휴대전화가 없어 놓치는 메시지 역시 대부분 주변적인 것들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은다. 단지 심심해서 잡담을 하려고 휴대전화를 거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통계가 이를 방증한다.
그 때문에 박 연구원은 휴대전화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오히려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양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늘어났을지 모르죠. 그러나 주로 ‘잡담’을 나누는 데 집중되면서 서로 진정한 교감을 나눌 시간은 빼앗아 갔다고 봅니다.”
인류는 휴대전화로 커뮤니케이션 혁명이 열렸다고 선언했다. 그 혁명이 우리에게 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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