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강체는 메모리로 만들 경우 자기와 전기로 동시에 읽고 쓸 수 있다.
하드디스크에서는 미니 자석들이 모인 물질인 자성체가 입혀져 있어 각 미니 자석의 극성이 바뀌면서 정보가 0과 1로 기록된다. 반면 D램에서는 전하를 담는 그릇인 축전기가 수없이 들어가 있어 미니 축전기에 전하를 저장하면 1, 전하를 빼내면 0으로 정보가 기록된다.
다강체를 쓰면 하드디스크와 D램을 ‘짬뽕’하는 새로운 메모리가 가능한 셈. 집적도가 기존의 2배로 높아지고 하드디스크처럼 전원을 꺼도 기록이 남는다.
최근 한국인 유학생이 획기적인 신물질인 다강체를 찾아냈다. 주인공은 미국 럿거스대 물리학과 허남정씨(34·사진)다.
허씨는 “신물질 ‘터븀 망간산화물(TbMn₂O5)’에서 자석 사이에 놓으면 전하가 쏠리는 현상을 최초로 발견했다”고 2일 국제전화를 통해 밝혔다.
허씨는 터븀 망간산화물 결정을 얇게 만들어 초전도자석 사이에 두자 섭씨 영하 235도 이하에서 이 물질의 전기적 성질이 눈에 띌 정도로 바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자석에 의해 자기적 성질이 아니라 전기적 성질이 바뀌는 것은 다강체만의 특징.
1년 반 동안 수백 가지 물질을 대상으로 실험하다가 드디어 터븀 망간산화물에서 특별한 성질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결과는 세계적 과학전문지 ‘네이처’ 5월 27일자에 실렸다. 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대표적인 게 논문의 심사위원이 허씨의 결과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람에 퇴짜를 맞았던 일. 하지만 허씨는 이 물질이 새로운 메모리 소자로 쓰일 수 있다는 실험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또 허씨는 최근 터븀 망간산화물과 비슷한 계열인 ‘디스프로슘 망간산화물(DyMn₂O5)’에서 획기적인 발견을 했다. 자석 사이에 이 물질을 놓아두자 전하를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인 유전율이 100% 증가한 것. 이 결과는 세계적 물리학전문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 3일자에 실렸다.
허씨의 지도교수인 럿거스대 정상욱 교수는 “유전율은 빛의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있는 굴절률과 관계된다”며 “자기장에 따라 굴절률이 바뀌는 이런 물질이 광신호의 연결 스위치에 쓰이면 휴대전화의 연결 속도가 더 빨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허씨는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1999년 럿거스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올해 말 고체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을 예정이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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