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연구팀 “머릿니는 인간 진화과정비밀 알고 있었다”

  • 입력 2004년 10월 14일 19시 04분


머릿니(사진)는 인간의 머리털에 살면서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충으로 인간에게서 벗어나면 수시간 내지 수일이 지나 곧 죽게 된다. 머릿니의 진화 역사는 인간과 함께한 셈. 최근 전 세계 머릿니를 연구해 인류의 진화 과정을 추적한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플로리다자연사박물관 데이비드 리드 박사팀은 인간의 머릿니(Pediculus humanus)에 대한 DNA 분석을 통해 현재 살고 있는 머릿니가 2종류, 즉 세계 각지에 분포하는 종류와 아메리카대륙에만 사는 종류가 있음을 밝혀냈다.

머릿니가 인간의 머리털을 통해 전파되기 때문에 한 조상이 퍼뜨린 것이라면 당연히 전 세계에 있는 머릿니가 같은 종류일 것이다. 그렇다면 아메리카대륙에만 고립된 종류는 기원이 다르다는 뜻.

연구팀은 아메리카대륙의 머릿니가 원시인류가 수만년 전 현대인류에게 전해준 것이란 사실을 밝혀냈다.

100만년 이상 전에 원시인류는 아프리카에서 떠나 왔고 동아시아에서는 ‘호모에렉투스’로 진화해 자리 잡았다. 리드 박사는 “호모에렉투스는 현재 아메리카에만 사는 머릿니의 조상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에 따르면 수만년 전쯤 현대인류 ‘호모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출발해 전 세계로 흩어져 이전의 호모에렉투스 등을 대체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호모사피엔스는 동아시아로 이동해 여기에 살던 호모에렉투스와 만나게 됐다. 이때 전쟁 등을 치르면서 호모에렉투스의 머릿니가 호모사피엔스로 전달된 것. 그 후 베링기아(시베리아와 알래스카를 잇던 고대 지역)를 통해 호모사피엔스가 아메리카에 들어왔고 이들의 머릿니는 아메리카대륙에만 살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에 비해 원래부터 호모사피엔스의 머리털에 살고 있던 머릿니는 호모사피엔스가 세계 각지로 이동함에 따라 함께 전파됐다.

리드 박사팀의 머릿니 연구는 인류의 아프리카 기원설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생물학 전문지 ‘플로스 바이올로지’ 5일자에 발표됐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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