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알코올중독 느는데… “어디, 여자가” 편견속에 방치

  • 입력 2005년 3월 28일 18시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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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의왕시 다사랑중앙병원이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여성 알코올의존증 환자 전문병동. 병원 측은 “여성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크게 늘고 있으나 여성에 대한 편견 등으로 인해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아 여성 전문병동을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의왕=변영욱 기자
경기 의왕시 다사랑중앙병원이 국내 처음으로 문을 연 여성 알코올의존증 환자 전문병동. 병원 측은 “여성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크게 늘고 있으나 여성에 대한 편견 등으로 인해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많아 여성 전문병동을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의왕=변영욱 기자
결혼 15년차 주부 이모(36) 씨. 어린 나이에 시집살이를 시작해 회사원인 남편과 2명의 자녀를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던 그에게 7년 전부터 문제가 생겼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 한 잔, 두 잔, 석 잔…. 조금씩 입에 댄 술은 어느새 밤마다 소주 한 병을 마시지 않으면 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그는 10일 알코올의존증 치료 전문병원에 입원했다.

여성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늘고 있다.

28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년마다 실시하는 국민보건조사에 따르면 술을 마시는 성인여성 가운데 알코올의존 성향을 가진 사람은 1998년 3.1%에서 2001년 10.5%로 3년 사이에 3배로 증가했다.

성인 여성 음주자가 53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점을 감안할 때 알코올의존 성향을 가진 여성은 55만여 명에 이르는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남성은 24.1%에서 26.1%로 약간 느는 데 그쳤다.

그러나 알코올의존증 여성들은 가족과 사회의 편견과 냉대 때문에 이중고를 겪는다. 남성환자는 음주 중단과 치료를 적극적으로 권유받는 반면, 여성은 싸늘한 시선 속에 방치돼 치료의 기회를 놓치기 일쑤라는 것.

“여자친구끼리 술집에 들어섰을 때 못마땅하게 보는 남자들의 눈초리가 싫어서 혼자 집에서 마셨죠.”(L 씨·36·주부)

“남편이 술을 마실 때는 그러려니 하던 중학생 딸이 제가 술을 마시니까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하더군요.”(L 씨·38·주부)

27일 오전 경기 의왕시 다사랑 중앙병원의 여성 알코올의존증 전문병동에 수용된 환자 19명이 강의실에 둘러앉아 여성이어서 더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놓았다.

한 여성 환자는 “같은 증세로 입원한 남성 환자마저 여성 환자에게 ‘여자가 왜 이런 데를 다 오느냐’고 비아냥거린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여성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대부분은 주부. 남편보다 상대적으로 스트레스를 풀 방법이 적기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2003년 한국가정상담소의 조사결과 여성이 술을 마시는 이유로 남편과의 갈등, 시부모와의 갈등이 각각 1, 2위를 차지했다. 마땅한 ‘탈출구’를 찾지 못한 채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것으로 괴로움을 달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여성 알코올의존증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본인의 의지 못지않게 가족이 알코올의존증을 질병으로 받아들이고 치료에 적극 동참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다사랑중앙병원 이종섭(李鍾燮) 원장은 “주부의 경우 가족의 관심만 있어도 알코올의존증의 재발을 99%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알코올의존증: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금단현상을 보이거나, 음주로 인해 사회적 또는 직업적인 장애가 나타나거나, 음주의 양상이 병적인 상태에 이른 것을 가리킨다. 이전에는 ‘만성알코올중독’으로 불렸다. 현재 전문가들은 술에 만취한 상태를 알코올중독으로 표현하고, 만성적인 알코올중독 상태를 병의 일종인 알코올의존증으로 부른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전문병원 가보니▼

다사랑중앙병원은 23일 국내 처음으로 여성 알코올의존증 치료 전문병동을 열었다. 지난해 9월 시작한 여성 알코올의존증 치료 프로그램이 큰 호응을 얻자 병실과 의료진을 보강해 전문병동으로 확대한 것. 10개 병실에 현재 여성 환자는 19명.

3개월로 짜인 치료프로그램은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빠지기 쉬운 여성들이 자신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첫 달에는 폐쇄병동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두 달째부터 개방병동으로 옮겨 치료와 외출(일주일에 한 번)을 병행하며, 마지막 달에는 직업교육이 포함된 사회적응훈련을 받는다.

이 가운데 특히 매일 일기를 쓰고 그 내용을 토대로 상담사와 상의하는 ‘일기치료’의 효과가 크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

지난달 입원한 이모(36·여) 씨는 “처음 입원 때 썼던 글과 최근 쓴 일기를 비교해 보면 삶에 대한 의지가 많이 강해졌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두 번 환자의 가족을 위한 교육도 실시한다. 자신도 모르게 부인에게, 엄마에게, 며느리에게 심하게 대한 적은 없었는지 되돌아보며 가족끼리 치료 경험을 공유하게 하는 교육이다.

의왕=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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