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대 황우석(黃禹錫)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복제된 인간배아에서 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한 데 이어 제2, 제3의 ‘황우석’이 탄생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생명공학기술(BT)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지에 실린 논문은 최근 5년간 10배 이상 늘었다.
양적으로만 늘어난 게 아니라 질적으로도 향상되고 있다. 논문의 수준은 그 논문이 실리는 학술지의 인용지수(IF·논문이 다른 논문에 인용되는 빈도)를 통해 알 수 있다. 보통 IF가 10 이상이면 유명 학술지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에 따르면 네이처나 사이언스를 제외하고 BT 전문 유명 학술지에 발표하는 논문 수가 1998년 한 편도 없다가 2003년 16편으로 늘어났다.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네이처, 사이언스, 셀은 어떨까. IF가 30 내외인 이들 ‘빅3’ 학술지에 올해 들어서만 한국 과학자가 벌써 14편이나 발표했다. 한국과학재단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 따르면 2002년 이후 한국인이 발표한 논문은 한달에 2, 3편꼴로 ‘빅3’에 실렸는데 대부분이 BT 분야다.
논문으로 보면 BT 분야의 연구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최근 BT 분야의 기초연구에서 획기적인 돌파구가 생겼다”고 표현했다.
▽선진국이 주목한다=지난해 황 교수팀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데서 보듯이 한국 생명공학자의 위상은 꽤 높아졌다. 외국 학회에 주요 연사로 초청받고 미국 영국 등 선진 연구자들로부터 함께 연구하자는 제안이 쇄도하고 있다.
서울대 약대 김성훈(金聖勳) 교수는 암 억제와 관련된 단백질 네트워크 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전문가로 인정받아 2006년 일본에서 열리는 국제생화학회의 기조강연자로 초청받았다. 김 교수는 “요즘 다국적 제약회사 관계자들이 아시아 지역에 오면 꼭 한국을 방문한다”며 “지난달 초에는 바이엘사 관계자가 방한해 우리 연구에 관심을 보였다”고 밝혔다.
BT 분야 유명 학술지에 한국 과학자들의 성과를 다룬 특집이 나가는가 하면 한국은 해외 BT 기업들이 만든 고가의 첨단기기나 소프트웨어의 성능을 시험하는 ‘테스트 센터’가 되고 있다.
노화 조절 물질인 다우몬을 발견한 연세대 백융기(白融基) 교수는 “단백질의 기능을 밝히는 단백질체학의 3대 국제학술지 가운데 하나인 ‘프로테오믹스’가 2005년 11월호를 한국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만 담은 특집호로 꾸미기로 했다”고 전했다. 2003년 이후 세 번째다.
백 교수는 “단백질 정보나 이미지를 분석하는 수천만 원짜리 프로그램을 테스트한 것을 비롯해 최신 물질분석 장비가 제품으로 나오기 전에 사용해 본 후 결과를 넘겨주기도 했다”고 밝혔다.
▽창의성에 불 지핀 정부 지원=한국 BT 분야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최근 연구 성과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바탕에는 연구자들의 꾸준한 노력과 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등의 지원이 깔려 있다.
백 교수는 “인프라가 5년 전에 비하면 천양지차”라며 “최첨단 고성능 질량분석기 덕분에 3년 걸리던 작업을 이틀 만에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3년 복지부 질병유전단백질체사업의 책임자로 선정돼 연간 20억 원을 지원받고 있다.
5∼10년 후를 내다보고 도전하는 연구자들의 개척정신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50년 이상 풀리지 않았던, 식물이 빛의 양을 조절하는 원리를 밝혀낸 포항공대 남홍길(南洪吉) 교수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정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성훈 교수는 다른 사람들이 단백질을 만드는 데만 쓰인다고 생각했던 단백질 합성효소가 다른 기능을 가질 수 있다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의 연구는 1998년 과학기술부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에 선정돼 매년 6억 원 이상을 지원받았다.
김 교수는 최근 5년간 순수하게 국내에서 수행한 연구로 p38과 p18이라는 단백질의 암 억제 기능을 잇달아 규명했으며 그 결과를 네이처, 셀, 미국학술원지 등 유명 학술지에 50편 이상 발표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
■기술 최고지만 산업화는 걸음마
최근 한국은 생명공학기술(BT) 기초연구 분야에서 세계적 성과를 잇달아 내놓고 있지만 BT를 산업에 응용해 서비스나 제품을 생산하는 상용화 능력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져 있다.
특히 BT의 ‘꽃’으로 불리는 신약 제품이나 치료 방법을 내놓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BT 산업은 정보기술(IT)과 달리 10년 이상 장기간 기술을 개발해야 최종 생산품이나 서비스를 내놓을 수 있다.
선진국 BT 기업들은 유전자 치료나 신약 개발에 필요한 기반 기술 제공업체, 신약 후보 물질을 개발해 대형 제약사에 파는 전문 기업, 기술 생산과 판매에 참여하는 대형 BT 업체들이 ‘가치 사슬’을 형성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한국은 이런 산업적 토대가 부족하다.
선진국의 대형 제약회사들은 BT 관련 벤처의 기반 기술과 자금을 대는 역할을 하는 데 비해 국내 제약회사들은 국내 시장에서만 매출을 올리는 ‘로컬 기업’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유상(高裕祥) 수석연구원은 “정부가 꾸준히 자금을 지원하고 BT 기업들도 임상 시험과 응용 기술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춰야 기술의 산업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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