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는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왜 늘 눈을 깜박거리는 걸까? 흔히들 눈을 촉촉하게 하거나 보호하기 위해 깜박인다고 생각하지만, 최근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건 잘못된 상식이다. 오히려 눈 깜박거림은 눈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두뇌 활동의 부산물’이라고 한다.
영국 에든버러대학 에릭 폰더 박사 연구팀에 따르면, 온실처럼 습한 곳이나 사우나처럼 건조한 곳에 있더라도 눈 깜박거림의 횟수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책을 읽을 때 그 횟수가 3분의 1로 줄고, 외운 것을 암송할 때 2배 가까이 늘어난다.
특히 독서할 때를 자세히 살펴보면, 문장을 읽고 있는 동안에는 눈을 깜박이지 않다가 한 문장을 다 읽었거나 페이지를 넘길 때 눈을 깜박인다고 한다. 다시 말해 눈 깜박거림은 생각하고 있는 동안에는 잘 일어나지 않으며, 대뇌 정보처리 과정이 마무리될 때 나타나는 행동이라는 것이다.
‘눈이 마음의 창’이듯, 과학자들은 눈 깜박거림에서 뇌를 엿본다. 몸의 움직임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수치가 늘어나면 눈을 자주 깜박거린다. 그래서 도파민 수치가 부족한 파킨스씨 병 환자들은 눈을 적게 깜박거리고, 도파민 수치가 높은 정신분열증 환자들은 자주 깜박거린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의 질병 진행 정도를 파악하거나 투약 시점을 결정할 때 눈 깜빡거림을 조사하기도 한다.
눈 깜박거림에서 불안감을 엿보기도 한다. 전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 청문회 때 불리한 질문에서 두 배 이상 더 눈을 깜박였다는 분석결과는 유명하다. 데카르트 식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생각한다. 고로 깜박인다’라는 얘기다.
정재승 한국과학기술원 바이오시스템학과 교수
jsjeong@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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