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주장은 한동안 논란이 많았다. 오히려 상대방이 붉은색 유니폼을 보고 힘을 얻는다는 반박도 있었다. 그러나 영국 듀햄대 러셀 힐 교수는 과학학술지 ‘네이처’ 5월호에 “붉은색 유니폼을 입으면 승리할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고 발표해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실력 비슷하면 붉은색 유니폼 승률 60%
연구팀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경기 중 권투, 태권도, 레슬링 그레코로만형과 자유형 등 4개 격투기 종목을 분석했다. 경기자들은 파란색과 붉은색 유니폼 중 하나를 입는다. 연구 결과 붉은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의 승률이 55%로 절반을 넘었다. 붉은색의 승률이 가장 높은 종목은 태권도였다. 러셀 박사는 “경기자의 실력이 서로 비슷하면 붉은색 유니폼의 승률은 60%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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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팀은 유럽축구대회인 유로2004에 참가한 각국 대표팀의 승률도 함께 조사했다. 이들은 두어 가지 다른 색의 유니폼을 번갈아 입는데 붉은색 유니폼을 입었을 때 승률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골도 더 많이 넣었다.
과학자들은 붉은색이 동물 특히 영장류에서 위협색이기 때문에 ‘전투적인’ 스포츠경기에서 승리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공격 본능과 분노를 느끼면 혈압이 올라가고 혈관이 확장돼 얼굴이나 몸이 붉어진다. 비비 원숭이는 다른 수컷을 위협할 때 얼굴이 붉어지고 군함조 수컷도 붉은색의 가슴을 부풀려 다른 수컷을 위협한다. 야생의 습성이 무의식에 남아 있는 인간도 붉은색을 보면 상대의 공격성을 과다하게 느껴 기가 죽을 수 있다. 러셀 박사는 “붉은색 유니폼을 입으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이 더 분비돼 공격성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붉은색은 뇌 자극시켜 우울증에도 효과
붉은색이 갖는 힘은 스포츠 경기뿐이 아니다. 정신병원이나 대학 심리학과에서 사이코드라마를 공연할 때 우울증이 심한 환자에게 붉은색 조명을 비추면 환자가 다른 자극을 민감하게 느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상현 한성대 미디어디자인콘텐츠학부 교수는 “붉은색은 다른 색보다 더 많은 시각세포를 활성화하고 결과적으로 뇌의 각성 수준을 높여 우울증 환자의 자극 민감도를 높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어느 문화권이든 가장 먼저 생겨나는 색깔 단어는 일반적으로 검정과 흰색, 붉은색이다. 뇌 손상으로 잠시 시각을 잃었다 회복되는 경우 흐릿한 흑백의 상이 보이고 점차 회복되면서 붉은색을 먼저 보게 된다. 오래 전부터 붉은색은 색 중의 색으로 인식돼온 것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색은 붉은색
실제로 붉은색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사람 눈의 망막세포는 크게 두 가지다. 이 중 색깔을 느끼는 원추 모양의 세포(원추세포)가 낮에 활발하게 활동하며 긴 파장의 빛 즉 붉은빛에 민감하다. 밝은 곳에서 붉은색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다만 붉은색을 오래 보면 다른 색보다 눈 주위 근육이 더욱 긴장되므로 쉽게 피로해진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 기자 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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