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마음을 청소하는 운동으로 요가(Yoga), 태극권(Taichi), 필라테스(Pilates)를 소개했다. 요가를 위한 휴가, 나이키와 아디다스의 요가 패션이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으며 피트니스 운동 클럽의 프로그램들은 거의 필라테스로 바뀌고 있다고 타임지는 전했다.
최근 한국의 상황도 비슷하다. 요가 필라테스 코어(Core) 등을 배우기 위해 교육 시설과 문화 센터를 찾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불과 1년 여 전까지만 해도 앞선 유행의 운동으로 주목받다가 최근에는 마니아 층을 넘어 급속도로 대중화되고 있다.
이런 운동들은 ‘슬로 엑서사이즈(Slow Exercise)’로 불린다. 근육의 이완과 정적인 호흡, 명상을 통해 몸과 정신의 피로를 떨쳐내고 내면의 ‘균형’을 추구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이는 ‘카프(CAF·더 빨리, 더 높이, 더 강하게)’나 근육질을 추구해온 ‘패스트(Fast) 엑서사이즈’에 대한 반란이다. 21세기 운동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 21세기 운동 패러다임 '슬로 엑서사이즈' 열풍
2000년대 이전 한국 운동의 메인 스트림은 고강도 웨이트 트레이닝과 유산소 운동이었다.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람보같은 철인 근육형이나 브래드 피트같은 미남 근육형이 운동의 표본이 됐다. 이를 위해서 단백질 성분을 첨가한 셰이크를 마시거나 강도높은 식이 요법을 병행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 몸과 정신의 건강을 동시에 추구하는 웰니스(Wellness)와 슬로 라이프가 보편적 가치로 떠오르면서 자기 내면과 운동의 조화를 추구하는 슬로 엑서사이즈가 주목받고 있다.
1970년대 맨손 체조, 1980년대 테니스 수영 등 올림픽 종목, 1990년대 피트니스 클럽의 웨이트 트레이닝과 마라톤에 이어 최근에는 슬로 엑서사이즈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디자인 에꼴의 손병현(37) 대표는 “주 3회 애인과 요가 강습을 받는데 몸과 정신에 쌓인 스트레스를 호흡에 담아 방출할 때 희열을 느낀다”며 “이 운동은 술이나 음식 절제 등 삶의 작은 기쁨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슬로 엑서사이즈는 느린 동작으로 몸의 근육과 관절을 부드럽게 푼다는 점에서 서양의 스트레칭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동작마다 깊은 복식 호흡으로 오장육부를 정화하고 몸과 마음의 흐름에 의식을 집중하는 ‘생활 과학’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다.
미국의 피트니스 강사인 스투 미틀먼과 캐서린 캘런도 공저한 책 ‘슬로 번: 느리게 운동해 지방을 빠르게 연소시켜라(Slow Burn: Burn Fat Faster by Exercising Slower)’에서 슬로 엑서사이즈의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이들은 “슬로 엑서사이즈는 지방을 효과적으로 태우고 정신을 평온하게 만드는 반면 패스트 엑서사이즈는 자칫하면 몸과 마음에 스트레스를 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몸과 정신의 몰입이 왜 화두인가?
슬로 엑서사이즈의 간판인 요가는 지혜로운 삶과 조화와 중용(中庸)을 강조함으로써 슬로 라이프를 완성한다. ‘요가경’에서는 요가를 ‘치타 브르티 니로다(chitta vrtti nirodhah)’로 설명하는데, 이는 정신적 변화의 제지 또는 의식 동요의 억제라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현상 철학자 메를로 퐁티(1908∼1961)가 몸과 정신의 합일을 주장했다. 그는 몸을 한낱 객체가 아닌 정신이 구체화된 ‘의식 신체(conscious body)’로 규정했다. 심신의 통합체로서 몸을 인식하는 슬로 엑서사이즈와 유사한 맥락이다.
한국필라테스협회 전홍조(순천향대 예술학부 무용과 교수) 회장은 운동에서 몸과 마음의 합일과 몰입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트레드 밀 위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서 달릴 때 몸은 움직이고 있으나 정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지요. 반면 필라테스와 같은 슬로 엑서사이즈는 호흡과 함께 끊임없이 몸에 대한 정신의 집중을 요구합니다. 슬로 엑서사이즈는 ‘집중의 운동’으로도 불립니다.”
그러면 왜 몸과 정신의 몰입이 운동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가?
대구대 체육레저학부 권욱동 교수는 여가 운동의 변화로 설명한다. 여가 때 즐기는 운동에 여성의 참여가 급증하고, 소득 수준 향상과 함께 운동을 라이프 스타일이나 생활 체험으로 즐기려는 욕구가 확산되면서 몸의 이완과 명상에 집중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미국 시카고대 심리학과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저서 ‘몰입의 즐거움(Finding Flow)’에서 운동할 때 몰입을 경험하는 이들이 훨씬 많다고 밝혔다. 그가 824명의 10대에게 설문 조사한 결과 TV 시청 중에는 13%가, 운동 중에는 44%가 몰입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은 집중하기까지 심리적 장벽이 있으나 일단 그 문턱을 넘으면 몰입의 기쁨이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집중의 운동인 슬로 엑서사이즈는 에너지의 몰입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이다.
○ 한국의 슬로 엑서사이즈
국내에서도 슬로 엑서사이즈 관련 시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미스코리아 출신 탤런트 최윤영이 요가의 명품화를 표방하며 설립한 ‘퓨어 요가’, 뉴욕 빈야사 요가를 소개하는 ‘자이 요가’, 실내 섭씨 37도에서 비크람 요가를 가르치는 ‘캘리포니아 와우 코리아’, 가수 옥주현의 요가 트레이너 이승아 씨가 세운 ‘더 요가’, 폴스타 필라테스를 가르치는 ‘필라테스 파라팜’, 태극권을 소개하는 ‘심신수련센터 밝은 빛’ 등이 있다.
피트니스 센터 ‘휴레스트 웰빙 클럽’과 여성 전용 피트니스 ‘줄리엣 짐’도 요가 태극권 필라테스를 지도하고 있다. 자이 요가, 필라테스 파라팜 등 월 강습료는 25만∼30만 원.
화장품 브랜드 보디숍이 운영하는 ‘웰빙 스파’에서 최근 인기 있는 ‘타이 마사지’도 슬로 엑서사이즈의 일종. 이 마사지는 오일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요가와 비슷한 운동을 할 수 있다. 20, 30대 남녀 고객들이 주말 데이트 코스로 찾는다. ‘얼루어’ 등 웰니스 전문지와 화장품 브랜드들은 여성 고객 확보를 위해 슬로 엑서사이즈 시설들과 공동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슬로 엑서사이즈를 경험한 이들은 대부분 만족감을 표시한다.
“그동안 내 몸을 얼마나 혹사했는지 깨달았어요. 뻣뻣하게 굳어 굽혀지지 않는 몸을 보면서 몸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달리기와 테니스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나를 발견한 거죠.”(와인나라 김혜주 마케팅팀장·32)
3개월 전부터 필라테스를 배우고 있는 주부 백재민(36·서울 강남구 청담동) 씨도 “출산 후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이제는 마음의 화를 다스리고 일상에서 릴랙스하는 방법까지 터득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 앞으로 슬로 엑서사이즈에 대한 전망은 어떨까? 패스트 엑서사이즈는 프로 선수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자이 요가’의 민진희 원장은 “요가는 겉으로는 느리지만 내면의 근육과 기의 흐름이 강렬하다”며 “요가 등 슬로 엑서사이즈는 고대부터 전해 내려온 운동이기에 일시적인 유행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 원장은 회계사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서 일 중독증에 걸려 갖은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요가를 통해 치유했다.
JW 메리어트 호텔의 정주호 트레이너는 패스트 엑서사이즈와 슬로 엑서사이즈의 균형과 더불어 ‘요길라테스(요가+필라테스)’ ‘아쿠아필라테스(수중 필라테스)’, ‘발레코어(발레+코어)’ 등 슬로 엑서사이즈의 퓨전화가 가속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줄리엣 짐’의 오태석 GX(단체운동) 매니저는 “운동의 재활과 예방 기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바쁜 현대인에게 슬로 엑서사이즈는 내면의 성찰 기회를 주고 생활의 브레이크 역할을 담당하는 오아시스 같은 존재”라고 설명했다.
글=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사진=강병기 기자 arche@donga.com
▼슬로 엑서사이즈는…▼
슬로 엑서사이즈에는 요가 필라테스 코어 태극권 등이 있다. 고대 인도에서 시작된 요가, 중국 무술에서 비롯된 태극권, 1920년대 독일에서 개발된 필라테스, 1990년대 몸통 강화를 위해 주목 받았던 코어 트레이닝은 몸과 정신의 균형을 통해 동작 하나하나에 정신을 집중시키고 근육을 천천히 움직이는 게 특징이다.
○ 요가
요가는 몸, 마음, 정신의 결합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가 기원이다. 요가 수행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은 자세(아사나), 호흡(프리나야마), 명상이다. 요가에서는 호흡을 하면 산소뿐 아니라 기(氣)가 들어오고 나간다고 보기 때문에 정신을 한곳에 모아 복식호흡(들이쉴 때 배를 내밀고 내쉴 때 배를 넣는 것)과 교호호흡(좌우 콧구멍을 번갈아 열어주는 것)을 한다.
요가는 수행 방법에 따라 6가지로 나뉜다. △하타 요가: 가장 대중적인 요가 △라자 요가: 명상 요가 △즈나나 요가: 지식을 중시하는 요가 △박티 요가: 봉사와 헌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요가 △카르마 요가: 행위에서 기쁨을 얻는 실천 요가 △만트라 요가: 소리로 심신을 정화시키는 요가
○ 필라테스
독일인 요제프 필라테스가 제1차 세계대전 중 감옥의 병실 안 침대에서 고안한 운동이다. 용수철 줄 등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도구를 이용해 부상당한 동료들의 관절 치료와 회복에 큰 효과를 보였다. 이후 미국에 소개돼 신체의 유연성을 강화하려는 발레리나와 배우들에게 인기를 얻었다. 카메론 디아즈, 귀네스 팰트로가 마니아. 중국 기예, 인도 요가, 서양 스트레칭이 혼합돼 있다. 필라테스는 파워 하우스, 시각화 훈련, 호흡 등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파워 하우스는 배, 허리, 엉덩이, 허벅지 안쪽의 근육을 통칭하는 말로 필라테스의 모든 동작을 움직이는 힘의 원동력이 된다. 필라테스는 복부를 강화해 자세의 균형을 잡는다는 점에서 몸 전체의 근육을 강화하는 요가와 다르다.
○ 코어
10여 년 전 시작됐으며 몸통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이다. 코어 운동의 준비 단계에는 스트레칭이 포함되지만, 기존 스트레칭이 근육을 이완시켜 늘린 상태에서 멈추는 데 비해 코어 준비 단계에서는 수축시킨 근육을 꽉 조여 활성화한다. 짐 볼과 밴드를 활용해 몸통을 좌우로 틀거나 누워서 바벨 들어올리기 등 기계가 아닌 자신의 체중을 이용하는 동작이다. 한쪽 발을 내디디며 앞으로 깊숙이 앉는 런지 동작도 코어의 일종이다. 고급 피트니스 클럽에서는 유연성과 근력 강화를 위해 일대일 트레이닝으로 코어를 지도한다.
○ 태극권
17세기 중국 허난(河南)성 원(溫)현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를 단전에 모아 온몸에 소통시키고, 부드럽고 느린 근육의 움직임을 통해 몸과 마음의 내면적 수련을 중시한다. 하체를 키울 수 있는 운동이어서 다리 근육이 약한 노인들에게 좋다. 1990년 베이징(北京)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중국 전통 무술인 우슈(남권, 장권, 태극권)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국내에서도 1990년대 후반 활발하게 소개됐다. 요가가 정지 상태에서 근육을 움직이는 ‘정중동(靜中動)’의 운동이라면, 태극권은 움직이는 몸 속에서 안정된 정신을 찾는 ‘동중정(動中靜)’의 운동이다. 태극권에서는 1시간 동안 80개 정도의 동작을 천천히 실행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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