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약사 부부 둘째아이 키우기]<4>젖 짜서 먹이기

  • 입력 2005년 10월 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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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이의 모유황달로 인해 모유를 끊었던 이틀 동안 우리 집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다. 어디선가 끊임없이 기계음이 들리고, 집안에 폭탄이 몇 개 떨어진 것 같았다. 여기저기 빈 젖병과 똥 싼 기저귀, 승민이가 벌려 놓은 장난감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초췌한 얼굴의 아내는 패잔병처럼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이는 순전히 유축기 사용이 불러온 부작용이었다. 승민이가 태어났던 3년 전에도 이랬다.

‘유두혼동’으로 승민이는 생후 1달 반이 되도록 엄마 젖을 물지 않아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유축기로 짜서 젖을 먹였다. 당시 아내는 젖의 양이 줄지 않도록 알람을 맞춰 놓고 2시간마다(밤에도!) 30분씩 젖을 짜느라 하루 종일 유축기를 끼고 살았다. 직접 젖을 물리면 한 번에 끝날 일을 젖을 짜는 시간, 먹이는 시간이 따로 들고 모유를 데우고 틈틈이 젖병 세정과 소독을 하다보니 먹이는 일에 하루를 다 바쳤다.

심지어 아내가 젖을 짜는 동안 승민이가 배고프다고 보채면 우유병을 베개에 받쳐 승민이 입에 물려 저 혼자 먹게 하는 때도 있었다.

최근 몇 년 사이 전동형 유축기가 보급되면서 젖을 짜서 먹이는 엄마들이 부쩍 늘었다. 몸조리할 때 ‘편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산모 곁에 돌보는 사람이 상주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젖을 짜서 먹이면 대개 엄마가 쉴 시간이 없어 힘들고 지쳐서 모유수유는 조기 종료되기 쉽다.

우유병을 빨 때보다 60배나 더 힘을 들여야 하는 엄마 젖을 빨며 아기들은 부지런히 안면 근육과 턱을 움직이는데, 이로써 턱과 치아가 발달하고 뇌 혈류량이 많아져 두뇌 발달도 촉진된다. 젖을 먹일 때 엄마와 아기가 맞닿는 스킨십도 촉각을 자극해 두뇌 발달을 돕고 정서적 안정을 준다. 젖을 짜서 먹이면 이러한 모유수유의 많은 장점을 놓치게 된다. 한편 유축기로는 젖을 완전히 비우기가 어려워 후유를 충분히 못 먹이게 돼 전유후유 불균형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후조리원이나 병원에서 유축기를 구입하거나 대여해서 젖을 짜서 먹이라고 부추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한번 짜서 먹이기 시작하면 유두혼동으로 아기가 엄마 젖을 거부해 계속 짜서 먹여야 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아기가 엄마 젖을 물지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짜서 먹일 이유가 없고, 유축기를 구입할 필요도 없다. 아기 입이 가장 강력하고 효율적이고 편리한 유축기다.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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