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장기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고유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병이 생긴다. 마라토너가 결승점에 닿기 전에 탈진하거나 도중하차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심장의 리듬(박동)에 문제가 생기면 목숨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그래서 마라톤 대회에서는 선수들과 함께 뛰면서 선수의 인체리듬을 체크하며 결승점까지 달리게 도와주는 ‘페이스메이커’가 필수다.
흥미롭게도 우리 몸 안에도 페이스메이커가 있다. 신체에서 끊임없이 운동하는 대표적인 기관은 위장과 심장. 이들이 제대로 리듬을 타며 운동하도록 조절하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최근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김기환서인석 교수팀은 위장의 리듬을 조절하는 페이스메이커의 메커니즘을 최초로 밝혔다. 위와 장은 음식물을 잘게 부수고 아래로 내려 보내기 위해 계속 꿈틀거리며 운동을 한다. 이 운동을 만들어내는 주인공은 위와 장에 있는 ‘카할세포’라고 10여 년 전부터 알려져 있다(카할은 이 세포를 발견한 스페인 과학자 이름). 이 세포가 바로 위장 운동을 지속시키는 페이스메이커인 셈이다.
○ 카할세포막서 전기신호 발생시켜
김 교수팀은 카할세포의 세포막에 있는 TRPM7이라는 통로가 열려 세포 밖에 있던 양이온들이 안으로 밀려들어가면서 순간적으로 전기신호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 연구 결과는 소화기 분야 권위지인 ‘위장관학회지’ 11월호에 실렸다.
소화 장애나 당뇨병 환자는 카할세포의 수가 적거나 기능이 현저히 약해져 있다. 따라서 위장의 리듬이 원활하지 못하다. 소화가 제대로 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김 교수는 “통로가 어떻게 닫히고 열리는지 밝히는 게 다음 연구 과제”라며 “이 과정을 조절하는 물질을 알아내면 소화능력을 회복시키는 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심장에서는 동방결절이 페이스메이커
심장근육도 평생 수축과 이완을 반복한다. 심장근육의 운동은 심장 안에 있는 ‘동방결절’이라는 작은 조직이 만들어낸다. 동방결절이 전기신호를 생성하면 이것이 심장 전체에 퍼지면서 근육이 움직인다. 심장에서는 동방결절이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이경진 교수팀은 동방결절의 방해꾼을 추적하고 있다. 심장에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전기신호가 생긴다. 심장 표면에 나선형의 ‘전기 소용돌이’가 만들어지는 것. 결국 동방결절에서 나오는 신호는 무시된 채 이 소용돌이가 점점 여러 개로 쪼개지면서 심장 각 부분이 제각각 움직이게 된다.
이런 상황에 이르면 심장이 규칙적으로 뛰지 못하고 파르르 떨기만 한다. 바로 심장마비 증세다.
이 교수는 “소용돌이가 만들어내는 리듬을 수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며 “불규칙한 리듬이 생기는 이유와 그 패턴을 알아내면 심장마비로 인한 돌연사를 막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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