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숭이 처녀생식 2002년 성공
사람의 경우 유전정보를 담고 있는 염색체의 수는 46개(2N)다. 아버지(정자)와 어머니(난자)에게서 각각 23개(1N)씩 물려받은 것이다.
그런데 난자는 처음부터 1N 상태인 것은 아니다(정자도 마찬가지). 원래 2N 상태였던 난모세포는 염색체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면서 분열해 1N의 난자가 만들어지는 것. 만일 분열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2N 상태라면 정자와 만나도 수정이 이뤄질 수 없다.
과학자들은 바로 이 점에 착안해 처녀생식을 떠올렸다. 즉 2N 상태의 미분열된 난자에 적절한 자극을 가하면 적어도 염색체 수에서는 문제가 없는 배아가 만들어지지 않겠는가.
2002년 미국 미시간주립대 동물생리학과 호세 시벨리 교수는 원숭이의 난자를 처녀생식을 통해 배아로 만드는 데 성공해 ‘사이언스’에 보고했다. 난자에 일시적인 전기 충격을 주고 적당한 시약을 처리한 결과였다.
이전까지 생쥐의 처녀생식은 세계적으로 여러 차례 이뤄져 왔다. 국내에서는 2002년 마리아생명공학연구소 박세필 소장 연구팀이 성공했다고 보고한 바 있다.
○ 줄기세포 확보가 목적
포유류에서 처녀생식으로 만들어진 배아는 생명체로 자랄 수 없다. 정확한 이유는 규명되지 않았지만 정자에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유전자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1977년 영국 에든버러대 의대 연구팀은 생쥐의 처녀생식 배아를 길러 발이나 심장 등 주요 기관이 형성되는 것을 관찰해 영국의 과학저널 ‘네이처’에 발표했다. 물론 이 생쥐는 태어나지 못했다.
최근 과학자들의 실험은 생명체 탄생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다만 4, 5일 정도 길러 배반포 배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배반포 배아의 내부에 있는 세포덩어리를 떼어내 적절히 배양하면 줄기세포가 만들어진다.
과학자들은 왜 이런 줄기세포를 만들려고 할까. 환자에게 면역 거부반응 없이 이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난자를 생산할 수 있는 여성에 한정된 얘기다.
예를 들어 심장이 손상된 여성에게서 난자를 얻어 처녀생식을 거쳐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다. 이 줄기세포를 그 여성의 심장에 이식한다면 면역 거부반응이 없을 것이다.
박세필 소장은 “처녀생식으로 줄기세포를 얻는 데 성공한다면 배란이 시작되지 않은 어린 여성이나 폐경기를 맞은 여성을 제외하곤 난치병 치료에 사용될 수 있다”며 “아직 인간 난자에서 성공한 학계 보고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황우석 교수팀이 얻으려 했던 ‘환자맞춤형 줄기세포’는 핵이 제거된 난자에 환자의 체세포를 융합(복제)하는 방식이므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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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자 두 개로는 어렵다
난자 대신 정자 두 개를 결합시키면 어떻게 될까. 1980년대 말 과학계에서 이런 시도가 실제로 행해졌다. 이미 수정이 이뤄진 생쥐의 배아에서 난자의 핵을 빼내고 여기에 다른 정자의 핵을 집어넣은 것. 정자의 핵이 두 개 있으니까 염색체 수는 2N이다. 정자만으로 배아가 만들어졌으니 총각생식인 셈이다. 하지만 이 배아는 몇 차례 분열하다 금세 죽었다.
상명대 생물학과 이성호 교수는 “이 실험은 난자 유전자가 배아의 형성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난자에도 세포의 분열과 성장 등 생명유지에 필수적인 유전자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박 소장은 “총각생식 배아는 배반포까지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줄기세포 연구자들은 처녀생식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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