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정인재]‘항생제 공포’에서 벗어나려면

  • 입력 2006년 1월 14일 03시 02분


항생제는 감염질환을 일으키는 세균을 죽이거나 활동을 못하게 하는 물질로 세포벽을 녹여버리기도 하고 세포가 단백질을 만드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런데 세균의 일부는 항생물질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습득된 내성에 관한 정보를 서로에게 전달한다. 새로운 항생제에 저항하는 내성의 유전정보를 추가할 뿐 아니라 다른 세균들과 짝짓기를 하면서 그것을 전달한다.

내성균들은 해당 항생제가 세균의 세포 내로 들어오는 것을 선택적으로 막는다. 세포 내로 들어온 항생제를 퍼내는 경우도 있고, 투여된 항생제를 파괴하거나 변형시키는 사례도 있다. 또 항생제의 가짜 표적을 대량으로 만들어 투여된 항생제를 소진시키기도 한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항생제에 대한 복합내성을 획득해 지금까지 만들어진 어떤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까지 출현했다. 항생제 내성률의 증가와 복합내성균의 출현은 응급 현장에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약국에서 일하며 환자가 가져온 처방전을 받아 들면 환자의 나이, 성별, 처방 내용을 확인하는 수초 동안 내 머릿속은 복잡해진다. 약물의 상호작용은 없는지, 용량은 적당한지, 발생되는 부작용은 무엇인지, 왜 이렇게 처방을 했는지 등과 같은 여러 생각을 떠올린다.

항생제가 든 약을 환자에게 건넬 때는 말이 더 많아진다. “항생제가 포함된 약이네요. 처방된 대로 하루에 세 번 꼭 지켜서 드세요. 그렇지 않으면 치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어요. 다 나은 느낌이 들어도 항생제가 처방된 약은 꼭 끝까지 드셔야 합니다. 복용하다가 중지하면 약을 이겨내는 강력한 세균이 탄생할 수 있거든요. 꼭이요 꼭!”

가끔은 항생제 처방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항생제에 대해서는 ‘처방의 방침’이 정해져 있는데도 1차 항생제가 아닌 값비싼 2차 항생제가 먼저 처방된 것이다. 새로운 항생제가 전문병원이 아닌 일반의원에서 처방되는 경우도 있다.

가톨릭대 의대 연구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축농증, 폐렴, 중이염 등을 앓고 있는 어린이 환자의 80% 정도에서 페니실린이 약효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국내 항생제 처방률은 외국 평균의 2배에 이르고 국내 항생제내성균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정확한 항생제 복용을 위해서 외국에서는 처방약은 3일을 복용하더라도 항생제가 10일치 필요하다면 의사를 다시 찾을 필요가 없도록 10일치를 처방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2∼3일씩만의 처방이 많다. 증상이 호전된 것 같으면 환자들이 병원을 찾지 않아 내성균을 키울 수도 있다.

항생제의 내성률을 줄이기 위해서는 의사 환자 약사 정부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의사는 질환별로 적절한 항생제를 선택하고 사용기간을 지켜야 한다. 약국에서는 환자에게 항생제 내성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 주면서 약 먹는 방법을 좀 더 적극적으로 안내해야 한다. 환자는 염증을 빨리 없앨 욕심으로 의사에게 함부로 항생제 처방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정부나 관련단체는 의사와 약사들에게 최신 항생물질에 대한 교육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 국민을 상대로 한 항생제 사용에 관한 캠페인도 필요하다.

최근 법원의 ‘항생제 과다 사용 병원 명단 공개’ 판결은 항생제 오남용을 줄이기 위한 경고등이다. 하지만 항생제는 환자 특성에 따라 선택이 다 다르다. 병원 명단이 공개된다고 항생제 오남용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항생제 내성의 심각성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문제를 해결해가는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환자 의사 약사 모두가 알려져 있는 항생제 복용 지침만이라도 더 정확하게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정인재 약사·건강누리 학술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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