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좀 떼어 주실래요… 건강을 드릴게요

실험재료인 기생충을 얻기 위해 틈날 때마다 지역 주민들을 찾아 ‘대변’을 요구하는 단국대 의대 서민 교수.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번 주부터 과학자들의 특이한 연구 소재를 소개하는 ‘연구실 X파일’을 연재한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연구 노트를 통해 과학의 길에서 겪는 보람과 애환을 생생히 전달하려고 한다.》

“노력은 해보겠지만 잘될는지 모르겠어요.”

마을 아주머니는 우리가 내민 대변통을 받고는 시큰둥하게 내뱉었다. 이런 경우엔 십중팔구 대변을 안 줄 확률이 높다.

“혹시라도 변을 보시면 통에다 넣어 대문 앞에 놔둬 주세요.”

다음 날 그 집 앞을 가보니 검정 대변통이 대문 앞에 놓여 있다. 웬일이지 싶어서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 속은 텅 비어 있다. 이런 가구가 한둘이 아니어서 다리 품을 팔아가며 300가구가 넘게 대변통을 나누어 주지만 수거되는 대변은 얼마 되지 않는다.

어쩌다가 가족 수만큼의 대변을 주시는 분께는 90도로 고개를 숙인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해버릴 뻔했다.

의대씩이나 나와서 대변을 구걸하는 모습을 부모님이 보신다면 아들이 교수라고 더는 자랑하지 않으실 것 같다.

요즘 시대가 각박해졌다더니 대변 인심마저 이렇듯 사납다. 시대가 달라짐에 따라 요즘 기생충학자들도 실험실에서 유전자(DNA)를 뽑고 단백질을 분석하는 첨단 연구를 하지만, 그래도 사람에게 기생충이 있는지 알아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대변검사. 그래서 우리는 가끔씩 마을 주민들에게 ‘대변’을 구걸한다.

피를 뽑자는 것도 아니고, 금반지를 달라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하수구로 흘러들어갈 대변, ‘조금만 떼어서 주면 안 되나요?’

회를 즐겨먹는 바닷가 마을은 특히나 기생충 감염률이 높고, 검사 결과 기생충 감염이 확인되면 공짜로 약도 주는데 말이다. 더구나 그 대변이 기생충학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면 한 조각이 아니라 통째로 다 준다 한들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는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대변과 접촉하는 게 더러워서 그런다고? 그런 분들께 이 말씀을 드리겠다.

“자신의 대변을 자신이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그걸 소중히 여겨 주겠는가? 기생충학자 말고.”

서 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bbbenji@freech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