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의 주요 연구 도구는 컴퓨터. 과거의 규칙이 미래에도 적용된다는 가정 아래 과거 자료를 컴퓨터로 면밀히 분석하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수학공식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과거 실적이 없는 신상품 수요 예측 같은 문제는 참 난감하다. 분석할 자료 자체가 없으니 말이다. 이럴 때는 영락없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
1999년 겨울의 일이다. 한 기업에서 음성인식기술로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잘 팔릴지를 예측하는 과제를 의뢰받았다. 음성인식기술이 등장한 초기라 정보를 얻기가 어려웠다.
인터넷으로 조사를 하다 우연히 한 대기업 홈페이지에서 운영하고 있는 ‘음성인식교통정보안내시스템’을 발견했다. 당시 국내 기업들의 시제품보다 훨씬 앞선 수준이었다. 자동으로 핵심어를 식별해 교통상황에 따라 빠른 길을 안내해준다니 그야말로 혁신적이었다.
그 서비스에 전화를 걸어 연구실에서 어린이대공원까지 가는 길을 물어봤다. 예쁜 목소리가 제대로 알아듣고 빠른 길까지 정확히 안내했다. 좀 이상했다.
다시 전화를 걸어서 두서없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중간에 길을 물어봤다. 그랬더니 같은 목소리가 역시 정확히 알아듣고 안내해 주는 것이었다. 가짜 같았다.
한번 더 전화해서 다짜고짜 물었다. “당신 사람이죠?”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다시 물었다. “사람인 거 맞죠?” 한참 뒤 그 목소리는 곧 시스템 개발이 완료될 예정이라 미리 가상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비밀은 지켜 달라고 당부하면서.
과제 기간은 한 달뿐이었다. 급기야 미국까지 가서 현지 전문가들을 만나고 시제품을 검토했다. 국내 마케팅이나 음성인식기술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도 했다.
이런 자료를 토대로 제품 개발에 영향을 주는 변수들을 정한 다음 변수 간 관계를 파악했다. 그리고 음성인식기술을 적용했을 때 성공 가능성을 추정하는 수학공식을 개발했다.
그 결과 장난감이나 전자비서 같은 새로운 제품이 아니라 콜센터 같은 기존 서비스에 음성인식기술을 적용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현재 이 문제를 의뢰한 기업은 우리가 내린 결론을 바탕으로 음성인식 예약 서비스를 내놓아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차경천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예측연구실 박사 kccha@gsm.kaist.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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