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생제 처방 공개 이후 “처방률 변함없다”

  • 입력 2006년 4월 4일 16시 25분


2월9일 전국 병의원의 감기 등 급성상기도감염 환자에 대한 항생제 처방률이 공개된 이후 일선 병원에선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일부 병원에선 환자가 크게 줄었는가 하면 의사에게 항생제 처방 여부를 묻는 환자는 늘었다.

본보 보건·의학팀이 정부의 '항생제 처방률 공개' 두 달을 맞아 일반의 내과 소아과 이비인후과 가정의학과 등 5개 분야의 항생제 처방률 상위 10개 의원 총 50곳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벌인 결과 의외로 '변화가 없다'는 응답이 57%를 차지했다(응답 거부 10개 병원 제외).

또 '앞으로 항생제 처방을 줄일 것인가'에 대해 16곳(40%)만이 '줄일 것'이라고 답했다.

▽"항생제 처방, 줄이기 어렵다"=정부가 정한 '감기'의 범위와 치료법이 논란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정한 감기 환자군(群)에는 단순감기, 급성상기도증은 물론 급성편도염(J003), 급성후두염 및 기관지염(J004)도 들어있다.

경북 구미시 H의원은 "국내에선 편도염, 후두염, 기관지염은 항생제로 치료하는 게 원칙"이라며 "이런 환자에겐 앞으로도 항생제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Y의원 K원장은 "단순감기 환자에게 항생제를 주는 병원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이번 발표에선 감기의 범위를 지나치게 광범위하게 봤다"고 말했다.

여기다 환자 상태만으로는 염증의 원인이 바이러스인지 세균인지 판별하기 어렵고 바이러스질환으로 시작했지만 나중에 세균까지 감염되는 환자도 있다는 것이 의사들의 주장이다.

대한의사협회는 "공해 등 국가별로 처한 환경에 따라 항생제 사용은 다르다"며 "국내 항생제 내성률이 높은 것은 양어장, 가축사육장의 항생제 남용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평원 관계자는 "국내 의원의 항생제 처방 비율은 평균 62%로 미국(43%), 네덜란드(16%), 말레이시아(26%) 등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며 "공해가 심해 바이러스질환이 쉽게 합병증으로 발전한다는 등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반박했다.

▽처방률 공개, 환자에게 도움이 될까=환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공개 이후 병원의 환자 수는 '변화가 없다'(70%)는 응답이 많았다.

다만 항생제 처방에 민감한 소아과 등은 타격은 컸다. 일부 병원은 환자 수가 50~70% 줄었다.

또 환자들의 관심(복수응답)도 높아져 △약에 항생제가 들어있는지 묻고(30%) △약에서 항생제를 빼달라고 요구하며(20%) △항생제 처방이 많은 의원이라 피하는(10%) 등의 변화를 보였다.

그러나 정보 공개가 환자 치료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울산 Y의원 J원장은 "처방률 공개 이후 감기환자 가운데 합병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 일부에게도 항생제를 처방하지 않는다"며 "이들이 폐렴 등으로 합병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심평원의 한 관계자는 "의사 개인의 치료 경험에 따라 항생제가 필요 없는 환자에게도 관행적으로 처방했을 수도 있다"며 "환자를 유치하려는 의도는 없었는지 의사들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북 포항시의 L의원은 "항생제 처방을 공개해 의사에 대해 불신을 키우기보다 감기 치료에 있어서의 항생제 지침을 만드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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