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아이고 어르신, 왜 그러시는데요.”
1999년 6월 500t급 조사선을 타고 첫 고래조사에 나섰을 때 일이다. 부산항을 출발한 배는 고래를 찾아 동해 연안과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지그재그 방식으로 오가며 바다를 훑어 나갔다.
그렇게 항해를 시작한 지 6일째. 몇 차례 돌고래 떼를 만난 것 말고는 진짜 고래라곤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고래를 본다는 얘기에 솔깃해 동승한 기자들은 이미 자포자기한 지 오래였고 도우미로 나선 원로 고래잡이 포수들 사이에서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침저녁으로 변화무쌍한 날씨는 얄궂게만 느껴졌다.
“이게 글로벌 스탠더드(국제규범)라니깐요.”
이론과 규정을 빙자한 변명을 곧이곧대로 듣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는 듯했다.
한때 동해의 모비딕과 싸움을 벌이던 백전노장들은 ‘규정된 항로에서 벗어나 우연히 발견한 고래는 분포량 추정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방침이 마냥 못마땅한 눈치였다. 바로 코앞에 있는 고래조차 보지 못하는 젊은 연구자들의 행동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기색이었다.
그렇게 바다를 헤매기를 20여 일. 자포자기 심정으로 원로들의 의견을 한번 받아들여 보기로 했다. 한 원로 포수가 지목한 포항과 죽변 사이 바다를 뒤지기 시작한 지 서너 시간은 지났을까. 그 짧은 시간에 우리 일행은 그때까지 백과사전에서나 볼 수 있었던 밍크고래를 18마리나 만날 수 있었다. 별다른 수확이 없어 풀이 죽어 있던 기자단도 ‘이게 웬 횡재냐’라며 카메라를 이리저리 들이댔다.
그제야 바다가 우리에게 문을 열어줬다는 느낌에 마음이 왠지 편해졌다. 게다가 그간의 고된 여정을 위로라도 하려는 듯 수천 마리의 참돌고래 떼가 돌아오는 우리를 배웅했다. 그해 7월 전국의 모든 TV 뉴스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반도 고래는 그렇게 촬영된 것이다.
그때 일을 회상할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 하나가 있다. 그동안 고래가 우리 바다를 떠나 있었던 게 아니라 우리가 그들에게 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김장근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장 zgkim@@nfrda.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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