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람-세상]‘범죄의 추억’ 과학은 알고 있다

  • 입력 2006년 5월 29일 03시 01분


뇌파 분석 최근 수사에서는 과학적 기법이 많이 사용돼 각국은 경쟁적으로 과학수사 장비 등을 갖춰 나가고 있다. 2004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 직원들이 첨단 뇌파 분석 장치를 시연하고 있다. 이 장치는 피의자가 범죄 장면을 봤을 때 나타내는 0.3초 안팎의 뇌파 변화를 감지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뇌파 분석 최근 수사에서는 과학적 기법이 많이 사용돼 각국은 경쟁적으로 과학수사 장비 등을 갖춰 나가고 있다. 2004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 직원들이 첨단 뇌파 분석 장치를 시연하고 있다. 이 장치는 피의자가 범죄 장면을 봤을 때 나타내는 0.3초 안팎의 뇌파 변화를 감지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뇌파 분석 최근 수사에서는 과학적 기법이 많이 사용돼 각국은 경쟁적으로 과학수사 장비 등을 갖춰 나가고 있다. 2004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 직원들이 첨단 뇌파 분석 장치를 시연하고 있다. 이 장치는 피의자가 범죄 장면을 봤을 때 나타내는 0.3초 안팎의 뇌파 변화를 감지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뇌파 분석 최근 수사에서는 과학적 기법이 많이 사용돼 각국은 경쟁적으로 과학수사 장비 등을 갖춰 나가고 있다. 2004년 대검찰청 과학수사과 직원들이 첨단 뇌파 분석 장치를 시연하고 있다. 이 장치는 피의자가 범죄 장면을 봤을 때 나타내는 0.3초 안팎의 뇌파 변화를 감지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국내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미국 CBS TV의 연속극 ‘C.S.I.(Crimes Scene Investigation) 과학수사대’. 이 드라마의 수사팀 5명은 과학수사 기법으로 어려운 사건의 단서를 찾아내 반전 끝에 범인을 찾아낸다. 미국에선 이처럼 ‘과학의 힘’을 빌리는 수사가 일상화돼 있다. 미국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한국에서도 첨단 과학수사 기법이 사건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한 사건을 통해 이 같은 기법이 실제 어떻게 적용되는지 살펴보자.》

■ 국내 과학수사 사례

2003년 10월 경남 소도시의 한 수영장에서 A(당시 9세) 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익사한 것처럼 보였던 A 양의 위 속에서 부검 결과 청산염이 검출됐다. 치사량을 넘는 청산염을 섭취한 것이 사망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경찰은 범인 추적에 나섰다. 누가 A 양에게 청산염이 든 음식을 줬느냐가 수사의 초점이 됐다.

경찰은 A 양이 죽기 직전 어머니를 만난 뒤 “나 맛있는 거 먹고 왔다”고 자랑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어머니 B(36) 씨가 유력한 용의 선상에 올랐지만 범행을 부인하면서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경찰은 약 2년에 걸쳐 B 씨와 주변 사람들을 탐문하고 증거물을 찾았으나 수사에 별다른 진척이 없었다.

그러나 영구미제로 남을 뻔했던 이 사건은 최첨단 과학수사 기법으로 조금씩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찰은 지난해 8월 대검찰청 과학수사과에 수사를 의뢰했다.

대검은 진술서 분석과 뇌파 분석, 행동 분석 등 과학수사 기법을 동원해 B 씨를 재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우선 B 씨에게 사건 당일을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는 진술서를 작성하게 했다. B 씨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단서가 진술서 곳곳에 있었다.

B 씨의 진술서에는 딸의 죽음에 대해 당황하거나 슬퍼하는 흔적이 전혀 없었다. 딸이 타살된 어머니에게서 나타나는 일반적인 반응이 없어 통상적인 진술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B 씨가 ‘딸이 위독하다’고 적었다가 지운 뒤 ‘위급하다’로 고친 부분도 석연치 않았다. 일반인에게 익숙한 단어인 ‘위독’ 대신 잘 쓰지 않는 ‘위급’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데는 딸과 독극물을 연결시키지 않으려는 무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검찰은 추론했다.

검찰은 B 씨의 진술 내용 가운데 살인사건 당시에 대한 내용이 12%에 불과한 점도 의심했다. 나머지 88%는 사건 전이나 후의 일에 관한 것들이었다. 범죄 피의자들은 ‘사건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핵심 질문을 피하기 위해 장황하게 다른 얘기를 늘어놓는 경향이 있다.

B 씨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한 검찰은 B 씨의 딸이 복용한 독극물을 넣은 음식물 종류와 구입처 등을 알아보기 위해 뇌파 분석을 실시했다.

검찰은 B 씨가 딸에게 줬을 가능성이 높은 음료수와 빵, 젤리 등 음식물 8종류를 제시했다. B 씨의 뇌파는 유독 요구르트를 보여줬을 때 민감한 반응을 나타냈다. 근처 슈퍼마켓을 찍은 사진 7장을 보여줬을 때는 D슈퍼마켓에 높은 뇌파 반응을 보였다.

검찰은 마지막으로 B 씨가 조사 당시 보인 몸짓이나 얼굴 표정을 사진으로 찍어 분석했다. 상식적으로 슬픈 표정을 지어야 할 때에 웃는 등 B 씨의 행동은 어색했다.

수사팀은 검찰의 분석 자료와 보강 수사를 통해 지난해 12월 딸에게 독극물을 섞은 요구르트를 마시게 한 혐의(살인)로 B 씨를 구속기소했다. 수사팀은 B 씨가 딸의 이름으로 가입한 보험금을 노리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은 이 같은 과학수사기법으로 분석한 자료를 사상 처음 법원에 제출했다. 법원은 아직까지 거짓말탐지기의 분석 결과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듯이 진술서 분석, 뇌파 분석, 행동 분석도 증거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이는 외국의 법원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법원이 이들 자료를 재판에 어떻게 활용할지도 관심사다.

수사 과정에서도 범행에 대해 자백하지 않았고 법정에서도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B 씨는 현재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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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美FBI 수사기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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