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도 하고 삼복더위도 피해 갈 수 있느니 꿩 먹고 알 먹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냉동실과 30도를 훨씬 웃도는 바깥을 오가다 보면 기온 차 덕에 감기에 대한 면역성도 커져 1년 내내 감기 걱정 없겠다는 시샘도 덧붙는다.
하지만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몇 해 전 일이다. 남미 우루과이 빙하학자 2명과 함께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100km 떨어진 리빙스턴 섬에 간 일이 있었다. 1주일 정도 머무를 계획으로 빙하 위에 텐트를 치고 생활했다.
보통 극지 연구자들의 피할 수 없는 생활고가 있으니 바로 ‘용변’을 해결하는 문제다. 목욕은 물론이고 양치질만 겨우 하면서 지내는 불편 따위야 참을 수 있지만 ‘볼일’만은 참고 지낼 수 없지 않은가. 이럴 땐 삽자루를 들고 가급적 텐트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달려간다. 물론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 때문에 되도록 빨리 볼일을 끝내야만 한다.
사건은 예정된 연구가 끝나고 헬기가 데리러 오기로 약속된 전날 일어났다. 기지로 빨리 돌아가 따뜻한 욕조 안에 몸을 담글 생각에 다들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오후로 접어들면서 날씨가 악화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눈보라가 몰아치기 시작한 것. 이런 날씨에는 당연히 헬기가 뜨지 못한다. 다음 날에는 눈보라가 아예 폭풍설로 바뀌어 꼼짝없이 텐트에 갇힌 신세가 됐다.
더 큰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배 속 아래부터 계속해서 밀려드는 ‘신호’들. 폭풍설을 뚫고 도저히 밖으로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급기야 우리는 용변 보는 괴로움보다는 배고픔이 낫겠다는 생각에 차라리 굶기로 했다.
그렇게 버티기를 몇 시간. 결국 동료 한 명이 “더는 참을 수 없어”라며 삽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잠시 후 온통 눈으로 뒤집어쓰고 얼어붙은 채로 돌아온 동료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사흘을 꼬박 굶고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된 뒤에야 우리는 무사히 기지로 복귀할 수 있었다.
여름이 돌아올 때마다 ‘냉동실’에서 일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지만 그 난감했던 상황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아픔이 없는 행복은 절대 없다.’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홍성민 한국해양연구원 부설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 smhong@kop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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