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끈후끈 여름 실내 지하수로 쿨∼하게

  • 입력 2006년 6월 9일 03시 04분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벌써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에어컨으로 눈길이 가긴 하지만 전기요금이 부담돼 선뜻 켜지는 못한다. 지난달 24∼26일 열린 국제지하수심포지엄에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하수지열연구부 송윤호 박사팀은 전력 소모를 절반까지 줄일 수 있는 ‘색다른’ 에어컨을 발표했다. 지열이나 지하수를 이용해 냉방을 한다는 것.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땅속은 이런 냉방 방식에 안성맞춤이다.》

○ 설비 하나로 냉난방 일석이조

최근 완공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지진연구동 주변의 땅 속에는 지름 16.5cm, 깊이 200m의 구멍이 28개 뚫려 있다. 각 구멍에는 파이프가 묻혀 있다. 이것이 바로 지열을 이용하는 냉방 설비다.

에어컨은 냉매가 실내 공기에서 열을 빼앗아 실외 공기로 내보내는 방식으로 냉방을 한다. 열을 내보내는 실외기 주변 공기의 온도는 한여름에 50∼60도까지 올라간다. 지열 냉방 설비의 원리는 에어컨과 같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냉매가 실내 공기에서 빼앗은 열을 땅속에 묻혀 있는 파이프를 통해 지하에 배출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땅속 100∼200m의 온도는 사시사철 평균 10∼15도를 유지한다. 여름에 30도를 웃도는 공기 중에 열을 내보내는 것보다 ‘시원한’ 땅속에 배출하는 게 훨씬 쉽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크게 줄어든다. 50여 명이 일하는 1000평 규모의 지진연구동 냉방은 올여름부터 모두 이 설비로 이뤄지게 된다. 송 박사는 “에어컨을 가동하는 데 필요한 전력의 30∼50%만 있으면 지열 설비로 충분히 냉방이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온도가 일정한 땅속이라도 계속 ‘열을 받으면’ 점점 더워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다행히 사계절이 뚜렷해 금세 겨울이 온다. 이때는 파이프를 통해 더워진 땅속의 열을 빼앗아 실내로 들여보낸다. 냉방시설이 겨울에는 난방용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 한국이 미국보다 유리

사실 국내에 지열을 이용한 냉난방 설비가 설치돼 있는 곳은 지질자원연구원 외에도 많다. 2004년까지 100여 곳에 이른다. 그러나 이번 설비는 기존 것과 달리 처음으로 우리만의 지질 특성을 고려해 구축됐다.

미국의 땅속 암반은 주로 퇴적암으로 이뤄져 있지만 한국은 변성암이나 화강암이 많다. 이들 암석은 고온 고압의 환경에서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기 때문에 퇴적암보다 입자가 촘촘해 열을 더 잘 전달한다. 냉매가 열을 배출하거나 빼앗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

그뿐만 아니라 변성암이나 화강암의 촘촘한 입자 사이사이마다 지하수가 차 있다. 물은 온도 변화가 적어 지열 설비 주변에 지하수가 흐르면 냉난방 효율이 높아진다. 암반이 지하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미국보다 m당 많게는 2배의 열량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지열 냉난방 설비에는 우리 지질 특성이 더 유리한 셈.

송 박사는 “지금까지는 지열 설비가 미국 기준으로 설계돼 파이프를 훨씬 깊이 박거나 대량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국내 지질과 지하수 분포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면 시공에 필요한 초기 투자비용을 30%까지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송 박사팀은 국내 땅속과 지하수층 온도, 암석 열전도도 등을 지역별로 상세히 조사하고 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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