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씨는 3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비뇨기암클리닉 홍성준 교수를 찾았다. 홍 교수는 전립샘(전립선)암, 방광암, 신장암 등 비뇨기종양 전문의로 2001년 동아일보 선정 베스트중견의사 비뇨기질환 1위에 선정된 바 있다. 그는 비뇨기종양의 조기 발견과 재발률을 낮추는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
“자세히 보니 혈뇨가 물감을 탄 것처럼 보이지 않고 붉은 덩어리가 뭉쳐져 있는 모양이에요. 기분이 영 찝찝해요.”(김 씨)
건강을 위해 15년간 테니스를 하고 있어 건강에 자신이 있었다는 김 씨. 탈이 나도 매일 두 병씩 마시는 맥주 때문에 간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생각했다. 피오줌도 속이 불편하거나 방광 관련 증세가 없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50세 이상의 나이에서 특별한 증세 없이 갑작스럽게 혈뇨가 나온다면 80∼90%에서는 신장과 방광 등 요로 계통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해요. 특히 50세 이후 눈으로 보이는 피오줌이 보였을 때는 방광암을 먼저 의심해 볼 수 있어요.”(홍 교수)
김 씨는 가슴이 철렁했다. 의사인 친구에게서 방광암일 수 있기 때문에 정밀 검사를 받아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였다.
“덩어리처럼 보이는 것은 방광 내에서 나온 피가 굳은 것으로 보면 됩니다. 콩팥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덩어리가 나올 수 있는데 이때는 색이 검어요.”(홍 교수)
혈뇨와 증세가 언제 나오느냐에 따라 몸 각 부위의 이상 여부를 추정할 수 있다고 홍 교수는 설명했다. 이 씨처럼 방광에 문제가 있으면 오줌을 처음 눌 때부터 끝까지 붉은색에 가까운 혈뇨를 눈다. 전립샘 비대증이나 전립샘암인 경우엔 혈뇨 이외에도 자주 마렵거나 시원하지 않는 등 방광 증세를 동반한다.
신장에 결석이 생긴 경우에는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동반되므로 증세가 없는 방광암과 다르다.
김 씨는 방광암 위험군에 속한다는 것이 홍 교수의 설명이다. 방광암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진 것은 흡연. 김 씨는 30년 전부터 담배를 하루에 한 갑에서 한 갑 반을 피울 만큼 골초다.
홍 교수는 동네 병원에서 찍은 복부 초음파 검사와 경정맥 신우조영술 사진을 본 뒤 바로 내시경검사를 하자고 권유했다. 경정맥 신우조영술은 콩팥과 요관 방광 등을 관찰하기 쉽도록 요오드 조영제를 혈관에 주사해서 X선을 찍는 것이다.
이날 오후 그는 내시경검사를 받았다. 요도를 통해 지름 1cm에 가까운 가느다란 내시경을 집어넣은 뒤 방광의 이상 여부를 보는 검사다. 방광 내시경은 조직검사는 물론 수술기구를 넣어 치료까지 할 수 있는 검사 겸 치료기기이다.
김 씨는 임신부의 자세처럼 양 다리를 거치대에 올려놓고 누웠고 의료진은 엉덩이에는 진통제를, 요도 안으로는 마취제를 주사했다. 10여 분 정도 걸리는 검사였다. 마취를 했어도 통증이 심했다. 다리에 힘이 풀렸을 정도다.
김 씨는 다음 날 가족에게 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김 씨의 딸과 아들 또한 왜 진작 말하지 않았느냐고 그동안의 상황에 대해 쉴 새 없이 물었다.
이틀 뒤의 종합검사 결과를 기다리기까지 잠을 제대로 못 이룬 김 씨. 김 씨는 앞으로 담배를 절대로 입에 대지 않고 술도 끓을 것이라고 몇 번을 다짐했다. <끝>
이진한기자·의사likeday@donga.com
전문가 진단
김성일 씨는 방광 오른쪽 위에 3cm 크기의 종양이 있어 방광내시경으로 이 종양을 잘라 냈다. 다행히 컴퓨터단층촬영(CT)과 전신골핵촬영에서 다른 장기로 전이된 흔적이 없어 앞으로 면역요법을 받고 일정 기간 3∼6개월 간격으로 추적검사를 받아야 한다.
방광암은 비뇨기암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암으로 전체 암 발병 순위 10위이자 남성 암 순위 5위다. 남자가 여자에 비해 4배 정도 발병 비율이 높다.
방광암의 원인은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흡연자나 염색 및 가죽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걸리기 쉬운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의 경우 장기간 머리에 염색을 자주 한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발병률이 3배나 된다.
또 10년 이상 직접 머리 염색약을 다룬 여성 미용사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5배 정도 발병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방광암의 증세는 통증이 없는 피오줌이 대부분이다. 일부 환자는 오줌을 눌 때 불쾌감을 느끼거나 아프고, 자주 오줌을 누는 증상을 나타내기도 한다. 드물게 암세포가 주변 조직으로 퍼진 경우엔 증세가 몸으로 퍼져 옆구리 통증 등이 나타날 수도 있다.
방광암은 40대 이후 중년에 잘 발견되지만 최근 20대나 30대 초반에도 상당히 진행돼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방광암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암세포가 방광을 포함한 전체 요로 상피 곳곳에서 발생할 수 있어 재발률이 70% 정도로 높다는 점이다.
방광암 환자들은 재발률을 낮추고 혹시 숨어 있을지도 모를 암세포를 억제하기 위해 결핵예방백신(BCG) 또는 항암제를 방광 안으로 주입하는 면역요법 등의 보조 치료를 받는다.
둘째는 방광암은 진단 당시부터 방광 안에 브로콜리 모양으로 돌출된 형태의 ‘표재성암’과 방광의 깊은 근육층을 뚫고 들어간 ‘침윤성암’으로 분류된다.
환자의 70% 이상이 표재성 방광암이다. 이 경우 대개 방광내시경 절제술로 암 제거가 가능하다.
침윤성암은 상태에 따라 방광 전체를 들어내고 항암요법을 병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 경우 방광내시경을 이용한 절제 및 방사선과 항암요법을 병행해 최대한 방광을 보존하며 치료한다. 여의치 않으면 장을 이용해 인공방광을 만들고 요관을 요도에 연결시켜 정상적인 배뇨기능과 성기능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아직 조기 검사법이 없어 40∼50대는 특별한 증세가 없으면서 육안으로 혈뇨가 보이면 반드시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여성은 피오줌을 무시하다 종양을 주먹만 한 혹으로 키워 병원을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홍성준 교수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비뇨기암클리닉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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