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은 그들을 ‘영웅’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쑥스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구조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말만 남기고 총총히 사라져 가는 ‘영웅들’에게 주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모든 게 순식간이었다. 15일 오전 10시경 강원 인제군 북면 한계3리를 향해 3m 높이의 집채만 한 ‘파도’가 밀어닥쳤다. 계곡 물이 갑자기 불어 넘치면서 산 정상 쪽에서 덮쳐온 물줄기는 가옥 40여 채를 눈 깜짝할 사이에 집어삼켰다. 주민 이강국(61) 씨는 “정신이 아찔했다. 순간 물이 목까지 차올랐다”며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이 씨는 세간을 챙길 틈도 없이 부인 손경민(56) 씨의 손을 잡고 물살을 헤치며 바로 옆 마을회관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엔 먼저 대피한 마을 주민 4명이 있었다.
마을회관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뿌리째 뽑힌 30∼40년 된 소나무가 곧추선 채 마을회관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질주해 왔다. ‘이렇게 죽는구나.’ 주민들은 모든 걸 포기하고 하늘만 쳐다봤다. 그때 영웅들이 나타났다. 김세준(37·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 강사) 씨 등 전문 산악인 8명이 물살을 거슬러 오르며 마을회관 옥상으로 올라왔다. 김 씨 등은 7년여 전부터 알고 지낸 이 마을 주민 정준교(49) 씨의 집에 머물며 9월 중국 산행에 대비해 훈련을 하고 있었다. 김 씨 등은 재빨리 산악용 로프를 꺼내 마을회관보다 고지대에 있는 민박집 지붕으로 로프를 던졌다. 옥상에 있던 집주인은 로프를 받아 단단히 고정했다. 주민들은 산악인들의 세심한 안내에 따라 로프에 매달려 차례로 민박집으로 이동했다. 주민들이 모두 대피하자 1∼2분 뒤 마을회관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삶과 죽음이 이처럼 촌음에 결정될 줄이야….’ 주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마음을 놓기엔 일렀다. 장맛비는 쉼 없이 내렸고 물은 계속 차올랐다. 산악인들은 주민들을 민박집에서 30여 m 떨어진 고지대의 또 다른 민박집으로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너비 15m의 강한 물살을 건너야 했다. 이미 한차례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주민들은 거센 물살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는 듯 주저했다.
“저희가 함께 건널 겁니다. 마음 놓으세요.” 산악인들은 주민들을 안심시키며 1시간여 동안 전원 무사히 안전한 민박집으로 옮겼다.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이 민박집에서 30여 m 떨어진 또 다른 가옥 옥상에서 주민 15명이 애타게 손을 흔들었다. 산악인들은 다시 로프를 둘러멨다. 이들은 처음 있었던 민박집으로 다시 건너간 뒤 10여 m 너비의 물살을 뚫고 주민 15명을 안전한 고지대의 민박집으로 구출해 냈다. 장장 4시간여의 사투.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삶은 감자 등으로 요기를 한 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머물고 있던 민박집에서 수백 m 떨어진 숲에서 주민 3명이 구조를 요청하는 모습이 가물가물 보였다. 한참을 망설이다 어둠 속이라 희생자가 생길까봐 구조를 다음 날로 미뤘다. 다음 날 오전 8시, 이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2시간여 만에 백동현(72) 문연실(58·여) 부부와 백 씨의 여동생 현주(70) 씨가 구조됐다. 이들은 밤새 추위와 허기에 시달려 탈진 상태였다. 산악인들은 “너무 늦게 와 죄송하다”며 미안해했다.
“생전 모르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 은인들이 오히려 미안하다니….”
백 씨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백 씨 부부는 전날 급류에 휩쓸려 30∼40m를 떠내려가다 전봇대를 붙잡고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산악인들은 비가 그치고 물이 빠진 17일 오전 로프를 이용해 주민 55명을 데리고 한계3리를 가로지르는 한계천을 건넜다. 이어 119구조대가 한계3리로 들어가 고립돼 있던 나머지 주민 40여 명을 구조했다.
주민들은 너나없이 식사라도 대접하겠다며 산악인들을 붙잡았지만 이들은 서둘러 짐을 챙겼다. 김 씨는 주민들에게 “우리가 가진 기술과 체력이 뜻 깊은 일에 쓰여 오히려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와 ‘열린캠프 등산학교’ 동문인 이들은 자신들이 몰고 온 차량 4대가 모두 물에 휩쓸려 가는 바람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