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적군 파악에 시간 걸려
면역반응은 T세포와 B세포가 주도한다. B세포는 병균을 물리치는 ‘무기’인 항체를 만들어낸다. T세포는 면역반응 전반을 조절하고 직접 병균을 물리친다. B세포를 도와주기도 한다.
항체가 병균을 적군으로 인식하고 항체를 생산할 때까지는 약 3일, 물리칠 때까지는 1주 반∼2주가 소요된다. 감기가 대개 2주간 지속되다 낫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동안 항체가 감기바이러스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병균은 몸 안에 침입하면 곧바로 수십 분마다 번식을 거듭한다. ‘적군’이 갑자기 떼로 밀려드는 것이다. ‘아군’인 B세포와 T세포는 ‘적군’이 누군지조차 제대로 파악 못한 상황. 무기도 없으니 자칫 밀리기 십상이다. 그러면 꼼짝 없이 오랜 기간 질병을 앓게 된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는 방법 중 하나가 예방주사(백신)다. 미래에 침입할 병균을 몸 안에 소량 투입하는 것. B세포와 T세포가 적군을 미리 파악하고 싸워보게 하는 ‘실전대비훈련’이다. 훈련을 받은 뒤에는 실제로 병균이 침입했을 때 더 빨리 전쟁모드에 돌입할 수 있다.
○ 무기 생산 전에 선방
결국 적군 침입 후 항체가 생기기 전의 ‘무방비’ 상태에서 얼마나 잘 버텨내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이 기간에 T세포나 B세포를 대신해 또 다른 면역세포들이 활약한다는 사실이 새롭게 알려졌다.
병균은 주로 기도나 피부를 통해 몸 안으로 침입한다. 이 경로에는 수지상세포, 대식세포, 섬유아세포 등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은 항체 없이도 병균을 막아낼 수 있는 ‘타고난’ 싸움꾼. B세포와 T세포가 무기를 갖출 때까지 몸을 방어하거나 병균을 공격한다. 연세대 생화학과 김영준 교수는 “병균이 들어온 지 몇 초 이내에 파괴할 정도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항체 생성 전과 생성 후의 면역반응을 각각 ‘선천성 면역’과 ‘적응성 면역’이라고 한다. 결국 인체 내의 방어체계는 이 두 단계로 이뤄지는 것이다. 선천성 면역이 활발히 연구되기 시작한 건 불과 3, 4년 전. 김 교수팀은 대식세포에서 ‘타이머’처럼 면역반응의 시작과 종료를 알리는 두 유전자(NF-kB와 AP-1)를 밝혀내 ‘네이처 이뮤놀러지’ 2005년 2월호에 발표했다.
장기를 이식할 때도 선천성, 적응성 면역반응이 모두 일어난다. 이때 면역반응은 환자의 몸이 이식된 장기가 ‘적군’으로 인식돼 일어나는 것이므로 억제해야 한다. 연세대 생명공학과 이상규 교수는 “두 단계 면역반응의 메커니즘을 밝혀내 단계별로 적합한 약을 개발하면 장기이식의 성공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교수팀은 선천성 면역세포의 활동을 조절하는 약물을 세포 내부로 직접 전달할 수 있는 물질(PTD)을 개발했다. 이 교수는 “PTD는 장기이식뿐 아니라 천식, 아토피피부염, 류머티스관절염 등 면역 관련 질병의 치료제 개발에 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네이처 메디슨’ 5월호와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5월 30일자에 잇따라 소개됐다.
○ 하등동물의 생존 비법
식물에는 B세포나 T세포가 없다. 당연히 항체를 만들지 못한다. 그런데도 생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선천성 면역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식물의 선천성 면역 메커니즘을 밝혀내면 해로운 곤충만 골라 죽일 수 있는 첨단 살충제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부 이원재 교수는 “곤충을 비롯한 무척추동물도 대부분 항체가 없는데 병균이 우글거리는 곳에서도 잘만 산다”며 “바로 선천성 면역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하등동물일수록 선천성 면역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는 것.
체내 방어체계를 가장 철저히 갖추고 있는 생물은 물론 인간이다. 하지만 인간의 선천성 면역기능은 어쩌면 하등동물보다 뒤떨어져 있을지 모른다. 불완전하기 때문에 적응성 면역까지 추가로 필요해진 게 아니었을까.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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