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저 험난한 파도에 CG함대를 띄워라!

  • 입력 2006년 8월 4일 03시 02분


코멘트
“험난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 한국과 일본의 군함을 띄워라!”

‘애∼앵’ 하는 긴박한 소음과 함께 동해에 나타난 일본 이지스 함대와 이를 막기 위해 출동한 대한민국 함대….

이렇게 결국 한국과 일본 간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인가? 일촉즉발의 순간이다. 물론 이는 진짜 전쟁이 아닌 영화 ‘한반도’에 나오는 한 장면일 뿐이다.

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서 주연 배우 대신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가상 배우가 피아노를 치는 장면을 만드는 작업이 끝난 지 불과 며칠이나 지났을까. 또 다른 작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우석 감독은 영화 ‘한반도’에서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해상에서 한일의 팽팽한 대치 상황을 넣고 싶어 했다. 긴박한 대치 상황, 다양한 구도, 현실감을 잘 살리겠다는 감독의 욕심은 강했다.

해군과 일본 자위대의 협조로 군함과 전투기를 동원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하지만 컴퓨터의 힘을 빌린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되겠어요?” “문제없죠.”

하지만 CG로 큰 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해외에서도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2001년 개봉한 영화 ‘진주만’과 2004년 영화 ‘트로이’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영화에 들어갈 해상 촬영 필름을 감독이 건네줬는데 그걸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연구팀이 개발한 소프트웨어로는 CG 연출이 도저히 불가능한 장면투성이였다.

‘아뿔싸!’

CG를 넣을 바다에는 파도까지 험난하게 치고 있었다. 어떤 장면은 날씨가 좋지 않아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카메라 움직임을 분석하는 트래킹 작업이 안 되면 자칫 공들여 만든 CG 함대를 바다에 올리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개봉까지 남은 시간도 얼마 없었다. “트래킹이 안 되면 영화를 못 올린다”는 주위의 은근한 ‘협박’을 뒤로하고 시간과의 싸움에 들어갔다.

늦은 밤까지 영상을 수없이 되돌려 보며 카메라 구도와 움직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고심 끝에 기본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바다를 보는 사람의 시선을 모방해 보기로 한 것이다. 카메라도 결국 사람 눈을 모방한 기계일 뿐이다. 눈앞에 펼쳐지는 해수면의 위치와 각도의 알고리듬을 찾기 위한 지루한 토론과 고민이 이어졌다. 그렇게 50여 일간의 고생 끝에 한일 함대의 팽팽한 접전 장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

물론 ‘후유증’도 남았다. 한반도가 개봉되고 얼마 뒤 회식 때 에피소드 하나. 남쪽에서 올라오는 태풍 소식을 전하는 뉴스 화면을 보던 ‘한반도’ 팀의 ‘이구동성’.

“바다만 보면 자꾸 울렁거려. 채널 돌려!”

박창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디지털액터연구팀 선임연구원

chjpark@etri.re.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