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복원센터 측은 인근 양봉 농가 55곳에 곰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전기 울타리를 설치했는데 그중 일부는 ‘보안’이 뚫려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김보현 복원부팀장은 “나무를 타고 5000V의 전기 울타리를 훌쩍 뛰어넘어 꿀을 훔쳐 먹는 솜씨를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라며 “전기 울타리 밑을 파고 들어가는 곰도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또 “곰이 벌 떼를 피하기 위해 벌통 안에 놓인 설탕물 그릇을 멀리 옮겨 놓은 뒤 벌이 그리로 몰려가면 벌통을 터는 장면도 목격했다”고 말했다. 설탕물은 농가에서 벌 먹이로 갖다 놓은 것.
23일 취재기자가 지리산 피아골에 갔을 때는 종복원센터가 양봉 농가의 꿀통을 훼손하는 곰을 마취총으로 포획해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고 있었다.
“‘장강24’가 가까이에 있어요. 목소리를 낮추세요.”
국립공원관리공단 종복원센터 정동혁(29) 수의사와 위치추적팀 이윤미(26·여) 씨의 얼굴에 긴장감이 흘렀다.
수신음이 점점 커지자 이 씨는 나지막한 소리로 “장강이가 50m 정도 떨어져 있으니 바위 뒤에 몸을 숨기라”고 말했다.
몇 차례 나뭇가지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이 씨는 “사람이 있는 것을 알고 달아난 것 같다”며 “장강이가 워낙 눈치가 빨라 생포가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장강24는 지난해 7월 방사된 3년생 북한산 반달곰. 6월부터 피아골 주위를 맴돌면서 자주 꿀을 훔쳐 먹는 말썽꾸러기다.
현재 지리산에 방사돼 야생에 적응하고 있는 반달곰은 14마리.
2004년 이후 3차례 연해주와 북한산 곰 20마리가 방사됐으나 이 가운데 2마리는 올무에 걸려 죽었고 3마리는 사람에게 먹을 것을 얻어먹고 따라다니다가 포획됐다.
18개월짜리 북한산 ‘레타’는 지난해 11월 말 목에 달고 다니던 발신기가 나무에 묶여 있는 채로 발견돼 사람에게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생후 3년이면 성적으로 성숙하고 4년부터는 새끼를 낳을 수 있어 센터 직원들은 동갑내기 커플의 교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다.
천왕이보다 1년 빠른, 2002년 방사됐다 포획된 ‘장군이’와 ‘막내’가 1월 지리산 생태학습장에서 새끼 2마리를 낳아 그 가능성을 한층 높여 주고 있다. 김만석 종복원센터장은 웃으며 “새끼만 낳아준다면 요즘 곰 때문에 겪는 여러 가지 소동은 즐거운 고민이다”고 말했다. 방사된 곰이 새끼를 낳는다면 자연에 적응했다는 1차 신호이기 때문이다.
지리산=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