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제 각자 위치로!”
연구원들은 미리 정해둔 자리로 가 몸을 숨기고 먼발치에서 암소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숨소리조차 들릴락 말락 할 정도로 아주 조용히. 인기척이 있으면 암소들이 ‘대화’를 꺼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안 보이자 암소들은 좀 더 자유롭게 행동하는 것 같았다. 고개를 젖히고 큰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삼삼오오 모여 자기들끼리 뭔가를 속닥거리기도 했다. 이들의 행동과 목소리는 모두 우리가 설치한 카메라와 마이크에 담겼다.
소들을 관찰하고 장비를 살피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이러기를 벌써 10여 년. 전국의 목장과 농가들을 다니며 소, 돼지, 닭, 개, 고양이 등 동물의 행동과 목소리를 녹음한 파일이 이제 3000개가 넘는다.
이 데이터베이스에 전자공학 기술을 응용해 동물음성번역시스템을 개발하는 게 우리 연구팀의 목표다. 동물이 내는 목소리를 사람이 듣고 어떤 뜻인지 알 수 있게 하자는 것.
동물의 ‘말’을 알아들으면 여러 면에서 인간에게 이롭다. 예를 들어 목소리로 암소의 발정기를 확인하면 번식 시기를 정확히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자칫 발정기를 놓치면 암소 한 마리당 한 달에 20만∼30만 원의 손해를 보기도 한다.
우리 연구실은 지난해 한국과학재단에서 생물음향은행으로 지정받았다. 이제 가축뿐 아니라 새나 곤충 등 다른 여러 동물의 목소리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하고 있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무더위가 견디기 어렵지만 오늘도 나는 연구원들과 목장으로 간다. 동물들이 “우리도 에어컨 틀어 주세요”라고 말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연성찬 경상대 수의학과 교수 scyeon@gnu.ac.kr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