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SA ‘음식 스트레스’ 줄이기 프로젝트
낯선 우주에서 우리 몸은 환경에 맞도록 변화한다. 지상과 달리 중력이 거의 ‘0’인 우주에서는 허리 아래쪽에 몰려 있던 혈액과 세포액이 허리 위로 올라온다. 이 때문에 코와 목이 부으면서 향과 맛을 느끼는 신경이 무뎌지는 것.
평형감각을 잃어버려 생기는 우주비행멀미도 식욕을 떨어뜨리는 데 일조한다.
위와 아래 구분이 없는 무중력 환경에서는 눈, 세반고리관, 관절 등 우리 몸의 평형을 유지하는 감각기관과 이를 관장하는 뇌 사이에 일대 혼란이 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입맛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하지만 음식 문제로 인한 우주인들의 스트레스는 심각한 수준이다.
정기영(대령·내과전문의) 공군항공우주의료원장은 “오랫동안 우주에서 생활하고 돌아온 우주인들이 밝힌 가장 큰 애로는 바로 음식으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말한다.
우주인들의 ‘고충’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2000년부터 매년 ‘우주식품경진대회(Space Food Competition)’를 개최하고 있다. 전 세계 식품 관련 전공자라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이 대회는 우주식품 개발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마련됐다.
이 대회를 통해 채택된 우주식품만 수십 가지에 이른다. 자칫 건강을 해치기 쉬운 우주인을 위해 특별 제작한 피자, 요구르트, 고단백 우유 등 쉽게 보기 힘든 식품들이다. 최근 대회 우승작은 야채 스프레드. 튜브를 짜면 세 겹으로 된 야채 페이스트가 나와 빵에 발라 먹을 수 있다.
○ 우주식 개발은 첨단식품 기술의 보물 창고
한국원자력연구소 이주운 박사는 “식품 가공 과정에서 미생물을 처리하기 위해 사용되는 첨단 방사선 기술, 진공 포장기술 등은 모두 우주식품 개발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식품 기술은 이미 오래전 생활 속을 파고들었다. 컵라면 속 김치나 군용음식에 사용되는 동결 건조 방식은 가장 대표적인 예다. 수분을 뺀 뒤 얼려 만드는 이 방식은 처음에는 우주선의 이륙중량을 줄이려는 의도에서 개발됐다.
바닷가 횟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추장, 겨자 등 튜브형 식품 역시 1960년대 러시아와 미국에서 우주인을 위해 개발됐다. 최초의 우주인 가가린도 튜브 형태로 만든 식사로 ‘민생고’를 해결했다. 우주식품 기술은 보관뿐 아니라 식품 안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HACCP)’은 그중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6월 집단 식중독 사고가 났을 때 언론에 자주 오른 이 관리기준은 원래 NASA에서 우주식을 개발하는 기준을 옮겨 온 것이다.
델몬트, 크래프트, 미쓰비시 등 세계적인 식품업체들이 매년 NASA의 우주식품 개발을 적극 후원하는 것은 이처럼 ‘배워 갈 게 많다’는 이유 때문이다.
○ 한국도 김치-라면 등 우주식품 개발 나서
최근 한국도 우주인배출사업이 본격 진행되면서 우주식품 쪽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미 CJ김치는 한국원자력연구소와 공동으로 2008년 우주로 올라갈 첫 한국 우주인이 맛볼 김치 개발에 참여했고 동원F&B는 우주인용 참치 개발에 뛰어들 태세다. 이 외에 국내 일부 라면 업체도 우주라면 개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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