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많이 본 문구. 어린 시절 겨울만 되면 학교 곳곳에 걸렸던 불조심 표어다.
공룡 화석 연구자인 내게도 이와 비슷한 ‘신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앉은 자리 다시 보고 볼 일 본 자리 다시 보자’는 것이다. 좀 엉뚱하게 들리는 이 문구가 신조가 되기까지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때는 약 15년 전 미국 유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동료들과 함께 세계 각지의 화석 발굴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짧으면 2주, 길면 서너 달씩 함께 지내다 보면 여러 웃지 못할 일들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일단 공룡이 살던 흔적이 발견되고 발굴 작업이 시작되면 발굴단원들은 각자 맡을 지역을 할당받는다.
온 종일 계속해서 이어지는 삽질과 곡괭이질. 뙤약볕 아래 쪼그리고 앉아 흙을 파고 뼈를 찾는 일은 보기보다 쉽지 않다. 그 때문인지 발굴을 시작한 뒤 한두 시간만 지나면 작업자들은 어느새 가지각색의 편안한 자세를 취한 채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문제는 그렇게 하루 종일 지겹도록 ‘할당구역’을 뒤졌건만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가고, 숙소를 향해 뒤로 도는 순간 일어난다. 한참 앉아 있다 일어난 자리에서 그토록 애타게 찾던 화석이 발견되는 것.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부분의 발굴 현장은 외딴 곳에 위치하고 있어 화장실 사정이 여의치 않다. 그래서 단원들은 발굴 현장 가까이 있는 은밀한 장소를 찾아 배설욕구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한번은 “여기요! 여기에 공룡 뼈가 있어요”라는 소리를 듣고 달려간 적이 있다. 모두들 ‘우르르’ 몰려간 그곳엔 정말로 큰 공룡 뼈 화석이 지표면에 드러나 있었다.
모두가 들뜬 마음에 환호성을 지르고 있는데 누군가 옆에서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어, 그런데 뼈 주위에 웬 물?”
그러자 방금 전 우리를 부른 한 젊은 단원의 얼굴이 벌겋게 변하기 시작했다.
“저 그게, 제가 여기서 소변을 봤는데, 이런 게 나올 줄은….”
이 일이 있은 뒤로 그 젊은 발굴단원은 아무리 급해도 가급적 먼 곳까지 나가는 버릇이 생겼다. 신기한 사실은 화석 발굴에 나설 때마다 비슷한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점이다.
요즘도 경남 고성과 전남 해남 등 한반도 백악기 공룡들의 놀이터를 찾을 때면 어디선가 반갑게 인사하는 공룡들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그래, 반갑다, 공룡아!’
임종덕 서울대 지구환경과학사업단 BK교수 dinostudy@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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