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몸과 마음은 임신과 출산을 통해 완전히 달라진다. 오죽하면 ‘베이비 쇼크’라는 말까지 나왔을까. 산모는 대부분 몸 움직임이 불편해지고, 먹고 자는 주기가 변하고, 남편과의 관계도 예전과 달라지는 것을 느끼며 견디기 힘들어한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임산부 3명 중 1명은 산전 산후에 우울한 기분을 느끼고, 100명 중 2, 3명은 우울증을 겪는다고 보고 있다.
○ 육아부담-가족들의 무관심 등이 원인
임신 5개월인 A(28) 씨는 어느 날 주치의와 상담을 하다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안 그래도 몸이 힘든데 주변에서 자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A 씨의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아침마다 전화를 걸어 아들의 아침밥은 챙겨줬는지 확인하고, 남편은 집안일을 도와주기는커녕 자기 일로 바빴다. 주치의는 다음 진료일에 함께 온 남편을 따로 불러 A 씨의 마음을 다독여주라고 조언했다.
B(35) 씨는 둘째 딸을 출산한 지 한 달 만에 신경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첫 아이를 낳은 직후에도 약한 우울감이 있었지만 곧 사라진 적이 있다. 하지만 둘째를 낳은 뒤에는 아이를 쳐다보기도 싫고 울면 때리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돌을 갓 지난 아이를 둔 C(31) 씨는 “아이를 제때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이 너무 힘들어 ‘위대한 모성’을 느끼는 대신 자꾸 아이가 미워져 스스로에 대해 ‘뭔가 잘못된 엄마’라는 좌절감만 느낀다”고 했다.
○ “호르몬 변화 탓”… 장기화땐 약물치료
산전 산후에 우울함을 느끼는 건 호르몬 변화와 관련이 깊다.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홍진표 교수는 “여성 호르몬은 임신했을 때 급격히 늘었다가 출산 이후에는 급격히 줄어들고 이때에는 유즙 분비 호르몬이 많아진다”며 “이 같은 급격한 몸의 호르몬 변화는 우울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소개했다.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스트레스도 우울증을 부르는 원인이다. 특히 평소 우울증이 있었거나 산후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었던 산모라면 다시 산후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
임산부가 느끼는 우울감은 대부분 특별한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지만 기간이 길어지거나 정도가 심해져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으므로 주의를 요한다. 단순히 기분이 우울한 게 아니라 밥맛이 떨어지고 불면증이 생긴다면 우울증을 의심해 봐야 한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한봉진 교수는 “우울증은 평소 성격과 상관없이 찾아온다”며 “아이를 보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생기는 게 아니라 부담으로 다가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게 되면 아기에게도 불행”이라고 말했다.
홍진표 교수는 “우울증을 겪는 산모는 가족들이 육아와 집안일을 분담하고 따뜻한 태도를 보이는 식으로 도와줘야 한다”며 “만일 남편과 갈등을 겪고 있다면 부부가 함께 상담 및 약물치료를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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