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악플 망령, 당신의 영혼을 노린다

  • 입력 2006년 9월 11일 03시 05분


일러스트레이션=황중환 기자
일러스트레이션=황중환 기자
모 스포츠지 명예기자인 대학생 노모(22·여) 씨는 최근 한 달 내내 속이 울렁거리고 불안해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신이 쓴 기사가 인터넷과 신문에 실리자 일부 누리꾼들이 악플(악성 댓글)을 붙인 것.

‘야 ○○○, 네가 기자냐.’ ‘네가 기자면 난 대통령이다.’ ‘(역시) 이공계 출신은 글을 못 쓰는구나.’

같은 ID를 가진 한 사람이 악플을 무려 30개나 올렸다.

노 씨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증오심과 공포감에 시달리게 됐다. 그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블로그에 달린 댓글을 삭제해 달라고 부탁한 뒤 인터넷에 접속할 정도였다.

▽악플 다는 사람의 심리=인터넷에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익명성을 빌려 숨어서 욕하는 셈이다. 이런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신감이 없고 심리적 열등감 등으로 위축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을 감정의 배설구로 이용한다.

의외로 교육 정도가 높은 성인이 악플을 달고 있다.

지난해 임수경 씨 아들 사망 기사에 욕설을 포함한 인신 공격적 언어와 폭력적 댓글을 단 사람들을 경찰이 수사한 결과 대기업 간부, 모 대학 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았다. 청소년이나 미성년자들은 사안에 대한 깊은 사고나 판단 없이 일종의 재미로 악플을 달기도 한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류인균 교수는 “악플은 달면 달수록 더 강력한 악플을 달게 하는 중독성이 있다”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본인에게 잠재된 열등의식을 운동이나 여행 등 다른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의 심리=악플에 당한 사람은 길가다 모르는 사람한테 갑자기 욕을 먹거나 구정물을 뒤집어 쓴 것과 같다. 대중 앞에서 모욕을 당하면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고 자꾸 그 충격을 생각하게 돼 스트레스를 받는다. 가해자를 잡을 수 없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더 괴로워한다.

피해를 당하면 극히 일부 미성숙한 아이나 열등한 성인의 행동으로 치부하고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강남차병원 신경정신과 서호석 교수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악플을 다는 사람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객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악플을 일반적인 평가라고 비약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피해자는 손상된 자신감을 만회할 수 있도록 친한 사람들과 대화를 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충격이나 스트레스가 심하다면, 전문의의 상담을 받아 약물치료 등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악플을 미리 막자=무조건 참을 게 아니라 법에 기댈 수도 있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 보호에 관한 법률 44조 1항은 ‘정보통신망을 이용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인하여 법률상 이익이 침해된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당해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 내용의 게재를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라 악플 피해자는 해당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악플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정보통신부 윤리위원회 신고상담실(02-3415-0113)을 이용하면 악플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심한 명예훼손에 해당되는 내용이라면 화면을 캡처해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에 수사를 의뢰할 수도 있다. 최근엔 탤런트 김태희 씨에 대해 근거 없는 악성 루머를 퍼뜨린 누리꾼 11명이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정보통신부 김종호 정보윤리팀장은 “늦어도 내년부터는 인터넷에 댓글을 달 때 실명을 사용하고 명예훼손 분쟁조정위원회를 신설해 피해자와 가해자의 복잡한 민사나 형사 고발 절차와 처리를 단순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조언▼

■ 가해자는

하면 할수록 더 강력한 악플 달아

잠재된 열등의식 다른 방법으로 풀어야

■ 피해자는

대중 앞에서 모욕당한 것과 같은 충격

무조건 참지 말고 약물치료나 법에 호소를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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