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세의 나이에 각 1000여 쪽 분량의 한국식물도감 1, 2권을 펴낸 이영로(전 이화여대 생물학과 교수) 박사는 자신의 책 속에 담긴 4157종의 식물 사진을 보며 아이처럼 웃었다.
이 박사는 카메라와 채집한 식물을 눌러 보관할 신문묶음을 친구 삼아 70년 꽃과 풀 찾기의 한길을 걸어온 인물.
그는 이번에 그의 일생을 담은 ‘새로운 한국식물도감’을 내놨다.
1996년 펴낸 ‘한국식물도감’을 10년 만에 개정하면서 800여 종의 한국 식물을 새롭게 추가한 것. 책에 담긴 사진의 90%는 이 박사가 직접 찍은 것이다.
이 박사는 “(책을 감수하며 출판사의 담당자와) 많이 싸워서 머리털이 다 빠져 버렸어”라며 허허 웃었다.
그는 이번 책을 미국의 예일대, 하버드대, 스미스소니언박물관과 일본 도쿄대, 영국의 왕립식물원 등 세계 전역으로 보냈다.
“한국은 위험해. 거기로 가면 적어도 200년은 보관되겠지.”
10만 점을 헤아리던 식물채집 표본을 6·25전쟁통에 다 잃고 나서 생긴 불안이다. 전쟁 전까지 그가 수집한 표본 중 남아 있는 것은 외국의 지인에게 선물로 줘 현재 미국 오클라호마대가 보관하고 있는 100여 점이 전부다.
이 박사가 식물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이던 중학교(전주사범) 1학년 때.
“그때 내가 숙제로 왕벚나무를 그렸거든. 봉오리가 맺혀 꽃이 필 때까지의 과정을 관찰해서 7장으로. 전교생 100명 중 제일 잘 그려서 학교 게시판에도 붙었었어.”
진짜처럼 세밀하게 식물을 그려낸 그를 당시 일본인 담당교사는 크게 칭찬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식물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엔 이미 1500여 종의 한국식물을 줄줄 꿰고 있었다.
서울대 사범대 생물교육과를 졸업하고 캔자스 주립대, 예일대를 거쳐 1964년 도쿄대에서 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 박사는 1955년부터 86년까지 꼬박 30여 년간 이화여대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학교를 떠난 후엔 20차례가 넘게 백두산을 오르는 등 우리나라의 산과 들을 탐험해 지금까지 150여 종의 식물을 최초로 발견해냈다. 그가 찾은 식물의 학명 뒤엔 그의 이니셜인 ‘Y. Lee’가 붙는다.
요즘도 소백산쯤은 당일치기로 올라갔다 온다는 이 박사의 체력에는 함께 일하는 40대 사진작가도 놀랄 정도다.
“이번에 책을 내고 제자들이 축하 파티를 열자는데 내가 고사했어. 왜인 줄 알아요? 2016년에 다음 개정판 낼 거거든.(웃음) 파티는 그때 가서 하려고. 이제야 식물에 눈을 떴어.”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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