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산하가 알록달록한 색동옷을 정갈히 차려입고 반갑게 사람들을 맞이하는 계절이다. 해마다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이맘때면 산으로 들로 나들이 가는 발길이 가볍다.
나무에 대해 얘기하는 말을 듣다 보면 재미있는 점을 발견한다. 한국 사람처럼 단풍 든 가을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흔치 않다. 제일 좋아하는 나무가 뭐냐는 질문에 응당 ‘소나무’라고 답하는 이들도 정작 휴식을 취하러 갈 때면 꽃 피고 단풍 드는 활엽수 숲을 찾는다.
사람에 비해 단풍 숲에서 풍성한 먹을거리와 포근한 안식처를 제공받는 새와 산짐승들은 그나마 솔직한 편이다.
요즘 들어 “가을 산이 왠지 더 아름다워 보인다”는 사람이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 몇 년 새 소나무 일색의 숲 대신 단풍나무, 생강나무, 누리장나무, 말채나무, 서어나무 등 다양한 활엽수로 이뤄진 숲이 부쩍 늘어났기 때문이다.
숲과 나무의 생사고락을 20년간 지켜보다가 최근 그 ‘가치’를 어떻게 매길 것인가 하는 것이 내 연구의 주된 관심사가 됐다. 이 연구는 “사람이 숲에서 얻는 혜택의 가치는 숲의 모습에 따라 달라진다”는 가설에서 시작됐다.
숲을 여러 모양으로 펼쳐 놓고 셈을 시작한다. 소나무 일색인 숲과 참나무, 단풍나무, 뽕나무, 생강나무 등 서로 다른 나무들이 섞여 사는 숲도 비교해 본다.
숲에 대한 가치 평가는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바뀐다. 도회지 숲과 시골의 숲이 다르고,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의 숲과 그렇지 못한 나라의 숲이 다르다. 한 나라 안이지만 세월이 바뀌고 소득 수준과 문화적인 성향이 변하면 숲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1년 내내 푸른 숲과 가을마다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는 숲도 마찬가지다. 나무는 소나무가 우리 정서에 가장 가깝지만 숲은 알록달록 단풍이 물든 가을 숲이 우리네 정서에 제격인 것이다.
논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요즘 단풍이 사람의 정서를 살찌우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양한 나무 덕에 단조로운 숲에서는 찾기 힘든 ‘아주 특별한 가을의 미학’을 만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조금 늦었지만 여전히 늦가을도 가을이다. 가을이 점점 깊어만 가고 나무들의 뽐내기는 끝이 없어 보인다.
윤여창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youn@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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