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 X파일]위성 테스트 앞두고 컴퓨터 태워

  • 입력 2006년 12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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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하는 외마디와 함께 재빨리 전원을 내렸다. 전원공급 장치의 계기판은 ‘28V’라는 터무니없는 숫자를 가리켰다. 실제 들어가야 하는 전압보다 5배나 높은 수치였다.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전압을 조정한 뒤 다시 전원을 켰다. 우려한 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꽤 쌀쌀해진 11월이고 쾌적한 청정실 안이었지만 담당자 이마엔 땀방울이 맺혔다.

한누리 2호의 첫 번째 우주환경 시험까지 남은 시간은 닷새. 한누리 2호는 국내에서 처음 제작하는 연구용 초소형 위성으로 2008년 발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대사’를 앞두고 벌어진 이 ‘최악의 상황’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모의실험을 수백 번이나 거친 상황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수많은 전자부품으로 이뤄진 인공위성에서 고장이 난 부분을 찾기란 결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차라리 새로 만드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연구원들이 총출동해 담당 분야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불행 중 다행인지 위성에 실린 ‘탑재 컴퓨터’ 말고는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였다. ‘죽은 컴퓨터’를 되살리기 위한 악전고투가 시작됐다. 문제가 있을 것 같은 부품들을 일일이 찾아 바꾸고 제대로 동작하는지 살폈다.

며칠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는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 결국 우주환경 시험은 연기됐고 예비용으로 마련한 컴퓨터를 긴급 동원하는 선에서 상황은 일단락됐다. 그 때문에 두 번째 모델은 다시 제작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며칠간의 밤샘 작업으로 녹초가 되어 버린 동료들에게 미안한 나머지 담당자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를 원망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랫동안 숱한 난관을 함께 헤쳐 온 연구원들끼리 느끼는 ‘끈끈한’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누리 2호는 대학원생 15명이 각 부분의 개발 책임을 맡고 있다. 각 부분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다른 한 곳에 문제가 생겨도 즉시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연구자들의 팀워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물론 위성개발 분야에서 연구원 개인의 능력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함께 일하는 연구원들이 얼마나 한마음으로 뭉치냐에 따라 연구의 성패는 크게 달라진다.

제자와 함께 연구하고 고민할 수 있다는 것은 함께 위성을 만드는 일 못지않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누리 2호는 비록 25kg에 불과한 ‘초미니’ 위성이지만 거기에 들인 노력과 정성은 대형 위성을 만드는 과정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항공우주기계공학부 교수 ykchang@ha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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