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엄 드라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어서….”
6000달러짜리 슈트를 입고 수만 달러가 오가는 도박을 즐기며 바다, 육지, 우주를 가리지 않고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남자의 대사다. 그 바쁜 가운데서도 미녀들과 잠자리는 잊지 않고 챙기는 남자, 그는 바로 007 제임스 본드다.
1962년 개봉된 ‘살인번호’를 시작으로 곧 개봉하는 ‘카지노 로얄’까지 40년 넘게 인기를 구가하는 007 시리즈의 인기 비결 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첨단 과학 장비. 로켓을 발사하는 담배, 스파이용 면도 키트, 텔레비전 손목시계, 미니 제트기 등 첨단 장비는 007영화가 스파이물의 대명사로 자리 잡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더 나아가 이 책은 007의 과학기술이 미래 과학기술을 선도했음을 짚어낸다.
개인휴대단말기(PDA), 휴대전화,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활용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예측한 본드의 위치 추적 장치가 등장한 ‘골드핑거’(1964년)나 2003년에야 연구 논문이 발표된 라텍스를 이용한 지문 위조법은 본드가 이미 ‘다이아몬드는 영원히’(1971년)에서 유명한 도둑을 사칭하며 써먹은 수법이다.
그러나 SF 소설가이자 본드의 열렬한 팬임을 자처하는 이 책의 두 저자는 칭찬만 늘어놓지 않았다. 007 시리즈에 나오는 과학적 의문점도 따끔하게 꼬집었다.
‘어나더 데이’(2002년)에서 북한군 문 대령은 우주 공간에서 레이저를 이용해 남한을 공격하려 하지만 저자들은 이 계획이 가능하려면 문 대령은 레이저를 실은 화학 탱크를 보잉 747 제트기에 싣고 5∼6km 상공을 비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구름, 비, 바람의 움직임으로 첩첩이 막힌 수백 km의 대기를 뚫는 레이저는 있을 수 없기 때문.
‘문레이커’(1979년)의 경우 지구를 침공하려는 투명 우주정거장의 이동을 본드가 극적으로 비상정지 버튼을 누름으로써 막아낸다. 저자들은 묻는다. 거대 우주정거장을 한 번에 올스톱시키는 비상정지 버튼은 대체 무슨 이유로 있는 걸까.
이 책에서 하늘을 나는 본드카를 설명하기 위해 양력 방정식을 도입한 부분이나 ‘두 번 산다’(1967년)에 나오는 1인용 헬리콥터의 가능성을 분석하기 위해 항력과 양력을 언급한 대목은 다소 난해하다. 그러나 ‘가장 멋진 마지막 대사’나 ‘미스터 본드의 기원을 밝혀라’, ‘비밀 기지에 대한 몇 가지 생각’ 등처럼 과학을 모르는 007 팬들도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인다.
영화에 관심이 있든지 과학기술에 관심이 있든지 본드를 안다면 누구나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007 종합선물세트’가 될 것 같다. 원제 ‘The Science of James Bond’(2006년).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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