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 엽]대선과 UCC

  • 입력 2007년 1월 3일 03시 05분


“(대선 후보의 꼴불견을 패러디한 동영상이 나오며) 이런 후보 찍지 맙시다!” “(후보의 연설 영상과 함께) 오늘 유세장에서 감동! 감동!”

올해 대선에서는 손수제작물(UCC) 동영상이 선거전의 도구로 각광받을 것이다. 젊은 층에서 불고 있는 UCC 열풍을 보면 선거 전략가들이 입맛을 다시기에 충분하다. 휴대전화나 디지털카메라 등 간편한 촬영장치로 콘텐츠를 만들어 인터넷에만 올리면 ‘빛의 속도’로 확산된다. 무엇보다 자발적 참여라고 주장할 수 있어 판세를 가르는 ‘한 방’을 기대할 수도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 때 한 후보는 유권자에게 막말을 한 모습이 찍힌 UCC가 유튜브에서 확산되는 바람에 낙선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UCC는 아직까지 사회적 공론 매체가 아니라 개인적인 놀이나 자기표현 수단에 머물고 있다. KBS 2TV ‘개그콘서트’의 ‘마빡이’를 흉내 내는 UCC를 비롯해 여러 군데에서 UCC를 내보내지만 거의 오락물이다.

그러나 대선처럼 온 나라의 관심이 쏠리는 정치 이벤트가 벌어지면 UCC가 사회적 매체로 급변하리라는 게 미디어와 정치학자의 견해다. 특히 많은 사람이 사용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을 결합시키는 ‘네트워크 이펙트’가 강한 디지털 매체에 UCC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시사주간지 ‘타임’이 지난해 ‘올해의 인물’로 ‘You(당신)’를 선정한 것은 보통 사람이 UCC 등 디지털 매체를 통해 변혁의 주체로 떠오른다는 뜻이다. 이를 디지털 민주주의의 구현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김사승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겉으로는 보통 사람들이 각광받지만 그 뒤에는 상업적 목적을 가진 이들이 있다”며 “유튜브나 위키피디아도 그런 보이지 않는 손 중 하나로, 그 파급력을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미디어의 위력은 2002년 12월 대선 때 엿볼 수 있었다. 선거일 오후,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던 한 30대 유권자는 “이회창 후보가 앞선다는 소식을 듣고 휴대전화로 ‘투표하러 가라’는 메시지를 친구들에게 일제히 날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두 지상파의 오후 3시 투표자 출구 조사에서는 이 후보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UCC의 주인공 ‘You’가 보이지 않는 손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You’로 상징되는 보통 사람들은 선거판에서 최선과 최악의 힘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반면 선동이나 겉포장에 매혹돼 포퓰리즘을 초래하기도 한다. UCC에 참여의 가면을 씌워 극단적인 대중 조작의 도구로 사용하는 행위를 통제하는 것도 쉽지 않다.

12월 대선은 한반도의 운명을 둘러싼 좌파와 우파의 한판 대결로 보는 이가 많다. 북한은 벌써부터 신년 공동사설에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친미반동보수 세력을 매장시켜야 한다”며 친북좌파의 향도를 자임하고 나섰다. 이런 절박함 때문에 디지털 광장의 익명성을 타고 악의적인 조작으로 서로 호도하는 UCC가 쏟아질 것이다.

‘You’가 진정한 ‘올해의 인물’이 되려면 현명해져야 한다. 보이지 않는 손도 보고, 민주주의의 과잉을 불러오는 디지털 광장의 역기능도 간파해야 한다. 불순한 UCC 광풍에 얼음처럼 차갑게 맞서야 하는 ‘당신’이다.

허 엽 문화부 차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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