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은 감성" 오감 충족시키는 디지털기기 이색 디자이너들

  • 입력 2007년 1월 31일 14시 34분


왼쪽부터 허우범 김민선 전명훈 안정희(앉은 사람) 씨. 김재명기자
왼쪽부터 허우범 김민선 전명훈 안정희(앉은 사람) 씨. 김재명기자
양정민(왼쪽) 김경진 씨. 김재명기자
양정민(왼쪽) 김경진 씨. 김재명기자
첨단 디지털 기기의 소리 감촉, 심지어 향기마저 디자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소비자의 오감(五感) 충족'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기술 경쟁 속에서 시장의 감성을 잡아야 진정한 승리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서울 강남구 역삼1동)의 이색 디자이너들 세계로 들어가 봤다.

●휴대전화의 100가지 소리 우리가 만든다-사운드 디자이너

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에서 나는 소리를 유심히 들어보자. 전원을 켜거나 끌 때, 숫자 버튼을 누를 때, 문자메시지가 왔을 때 나오는 소리가 저마다 다르다.

허우범(29·연세대 컴퓨터과학 전공) 연구원은 "휴대전화에 내장된 소리가 100개 정도 된다. 최근 시판된 휘센 에어컨에는 음성 150여 개, 배경음악 20여 개, 작동음 10개 정도가 들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소리를 들어도 그 음높이를 알아내는 절대음감의 소유자인 그는 "그런 능력이 디자인 작업을 할 때 감성적으로 도움을 준다"고 했다.

사운드 디자이너의 영역은 넓다. 안정희(38·포항공대 인간공학 전공) 책임연구원은 "제품에 소리를 넣을지 말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넣을지를 결정하고 적합한 소리를 만드는 일 모두가 디자이너의 몫"이라고 했다.

소비자는 에어컨에 대해 '시원한 느낌'을 원한다. 따라서 따뜻한 느낌의 바이올린 소리는 에어컨과 어울리지 않는다. '바람'을 불어넣어야 소리가 나는 플루트 같은 관악기가 에어컨과 맞는 궁합이다. 세탁기의 물방울 소리, 얼음을 연상시키는 냉장고의 경쾌한 종소리 등은 모두 소비자의 감성을 감안한 소리 디자인의 예이다.

전명훈(30·연세대 대학원 인지과학 전공) 주임연구원은 "이처럼 사운드 디자이너는 전문적인 음악 언어와 소비자의 감성 언어를 이어주는 통역자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요즘의 소리 디자인은 디지털 기기 속 캐릭터의 인사말을 '안녕하십니까'라고 할지, 아니면 '안녕하세요'가 더 좋은지도 꼼꼼히 따지는 수준이다.

최적의 소리가 그냥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김민선(29·연세대 대학원 인지공학심리학 전공) 주임연구원은 "어머니를 자주 괴롭힌다. '냉장고에서는 어떤 얘기가 나왔으면 좋겠느냐' '이 멜로디가 어울리느냐'를 질문하며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말했다.

●보이는 감촉, 들리는 촉감까지 잡아라-촉감(소재) 디자이너

양정민(31·이화여대 도예과 전공), 김경진(28·한국과학기술대 대학원 산업디자인학 전공) 주임연구원은 비슷한 직업병이 있다. 어떤 디지털 기기든 만져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

"백화점에 가면 거의 모든 기기를 다 만져보면서 어떤 소재를 썼는지, 표면 처리는 어떻게 했는지를 살핍니다."(양정민 씨)

"새 휴대전화를 산 친구를 만나면 전화기를 빼앗아 눌러볼 수 있는 건 다 눌러봅니다. 누르는 느낌이 어떤지도 친구에게 꼬치꼬치 캐묻죠."(김경진 씨)

이들은 좋은 제품은 3가지 촉감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만지는 촉감 이외에 보이는 촉감, 들리는 촉감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는 제품을 보면서 딱딱하거나 말랑말랑할 것이라고 느끼기도 하고, 버튼 누를 때의 소리를 듣고도 촉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양정민 연구원은 지난해 대박을 터트린 초콜릿폰(화이트)에 라벤다향을 입히는 데 참여하기도 했다. 그는 "향기는 매우 주관적이어서 상품화하는 데 고민이 많았지만 소비자들이 '어 향기도 나네'하며 좋아해줬다"고 말했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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