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도언]정신질환은 ‘마음의 감기’일 뿐

  • 입력 2007년 3월 13일 03시 01분


누구를 만나 전공이 정신과라고 하면 아직도 좀 별다른 눈으로 본다. 가까이 다가오면서 가벼운 상담을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절대로 (정신과 환자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눈길을 피하는 경우도 있다.

사람들은 환자를 두려워한다. 폐결핵이 창궐했을 때 환자에게 사회가 보인 반응은 오늘날 에이즈 환자를 보는 시선과 같았다. 오래된 큰 공공건물 상당수가 폐결핵 환자를 격리하기 위해 세운 요양원이었다. 폐결핵이 줄어들면서 요양원은 정신질환에 걸린 사람을 수용하는 시설로 전환됐다.

정신질환은 폐결핵이나 에이즈처럼 옮는 병이 아님에도 사람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다. 사회가 정신질환자에게 갖게 되는 편견의 실체는 다음과 같다. 첫째는 ‘정신질환=미치는 병’이라고 무조건 오해하는 것이다. 물론 병세가 심한 환자 일부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힘든 행동을 한다. 그런 사람은 격리된 상태 즉, 폐쇄병동에서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세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심한 환자가 모여 있는 폐쇄병동도 실제로 들어가 보면 21세기 서울 거리보다 훨씬 더 안전하다. 대부분의 정신증상은 입원 없이 치료가 가능하다.

둘째는 정신질환자와 자기는 뿌리가 다르다고 믿는 것이다. 우리 모두 엄격하게 말하면 누구나 조금씩은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다. 늘 느끼는 약간의 불안, 우울, 초조가 좀 지나쳐서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라면 이를 정신질환이라고 부를 뿐이다. 간혹 언론에서 범죄와 정신질환자를 연결해 보도하는 일이 있으나 대부분의 범죄는 소위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계획적으로 저지른다.

셋째는 ‘최상의 방어=공격’이라는 심리 전략의 결과다. 자신의 마음이 편안하지 않을수록, 마음 한구석에 ‘혹시 나도’ 하는 두려움이 있을수록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이 강해진다. 그래야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남들이 믿어줄 테니까.

문제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능히 고칠 수 있는 정신질환이 조기에 발견되지 못하고 제대로 치료가 안 된 채 방치됐다가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의 각종 통계를 조사해 보지 않더라도 잇따른 유명인의 자살 사건은 정신적 고통의 결과가 어떻게 비극적으로 폭발하는지 보여 줬다. 우울증과 자살은 이제 우리 모두의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이번에 동아일보가 정신건강 캠페인을 체계적으로 시작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국민이 정신건강에 대해 제대로 인식해야 해결책이 보일 것이다. 의료정책 차원에서도 정신질환이 국가경쟁력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을 감안해 정신보건사업에 체계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국민 정신건강 수호의 일선에 서 있는 정신과 등 관련 분야에 대한 지원과 격려도 필요하다. 학교시설에서도 정신보건 증진을 위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투자를 통해 정신질환자 치료시설 수준도 크게 높여야 한다.

삶의 질이 중요하다면 정신건강은 가장 중요한 밑바탕이다. 이제는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버리고 정신건강 증진을 통해 인구 감소에 대비해야 한다.

흥미롭게도 최근에는 ‘지나친 편견도 정신질환의 일종’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사실 남에 대한 편견은 “나 자신의 속이 비었다”는 증거일 수 있다. “나는 정신과 환자와 전혀 다르다”고 힘써 주장할수록 편견에 사로잡힌, 진짜 환자가 될지 모른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편견이라는 눈가리개가 아닌 폭넓은 이해로 받아들이는 데 힘쓴다. 정신질환자도 그저 몸이 아픈 사람과 같은, ‘마음의 감기’에 걸린 환자일 뿐이다. 사회는 당연히 그들을 돕고 따뜻하게 끌어안아야 한다.

정도언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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