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마니들이 산삼을 발견했을 때도 절차가 있다. 우선 큰소리로 ‘심봤다’를 세 번 외치고 갖고 있던 지팡이를 산삼이 있는 곳 부근에 꽂는다. 지팡이가 없으면 그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근처에 산삼이 더 있는지 조사한다. 산삼이 발견된 곳 주변에선 몇 뿌리가 더 나오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산삼을 처음 발견한 사람을 ‘선점자’라고 한다.
선점자가 부근의 조사까지 마치고 나야 다른 심마니들이 움직일 수 있다.
산삼을 팔 때는 1m가량 떨어진 곳에서부터 나무 막대로 캐기 시작한다.
산삼을 캐는 작업은 ‘캔다’ ‘파낸다’가 아니라 ‘돋운다’고 한다.》
○ ‘인삼은 만병통치약’
‘삼’은 어원과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처음에는 ‘심’이라고 불렸다. 조선 성종 20년(1489년)에 편찬한 ‘구급간이방언해’나 허준의 ‘동의보감’을 보면 한자로 ‘人蔘(인삼)’이라고 쓰고 한글로 ‘심’이라고 적었다. 오늘날에는 심은 산삼 채취인의 은어로만 쓰인다.
뿌리의 형상이 사람의 모양을 닮은 삼만 인삼으로 불러 그렇지 않은 삼과 구별한다. 특히 한국의 인삼은 ‘고려인삼’이란 이름으로 아예 한 종류로 분류될 정도. 학명은 ‘파낙스 진셍’으로 1843년 러시아의 카를 본 메이어가 명명한 것이다. 파낙스의 뜻은 ‘만병통치약’. ‘진셍’은 인삼의 중국 발음을 영어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어느 것이 진짜일까
산삼은 말 그대로 산에서 자란 삼이다. 삼의 씨앗을 먹은 새가 배설한 것이 싹터 자라면 ‘조복삼’이라고 한다. 조복삼 중에서도 산에서 자란 산삼은 ‘천종(天種)’또는 ‘산종’으로 불리며 최고 대접을 받는다. 사람이 삼의 씨를 산에 뿌려 키운 삼은 ‘장뇌삼’이다.
요즘 산삼은 ‘풍요 속의 빈곤’이라 할 수 있다. 시중에 나온 산삼의 90% 이상은 천종이 아니고 장뇌삼이다.
25년의 심마니 경력을 가진 경기 가평의 한 산삼수집상에 따르면 평생 한 번도 못 캐는 심마니가 있을 만큼 천종은 귀하다. 산삼이라고 쏟아지는 것들의 대부분은 20여 년 전 ‘나중에 다리 품값이나 벌자’는 생각으로 산행 때 산삼씨를 심어둔 것이라는 얘기다.
1982년부터 몇 년간 경북 풍기에서는 인삼축제 기간 행사의 하나로 헬리콥터를 동원해 연간 한 가마니 정도의 인삼씨를 소백산 일대에 뿌렸다.
최근엔 중국산 삼이 보따리상을 통해 밀수입돼 불법 유통되는 경우가 많다. 북한산 산삼으로 포장돼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것도 대부분 중국산 산삼이다. 북한에서도 천종은 희귀하기 때문이다.
○‘로또 복권’ 부럽지 않은 산삼
지난해 천종을 캔 사례 2, 3건이 잇따라 보도된 일이 있다. 좋은 산삼은 집 한 채 값과 맞먹는다. 100년 이상 묵은 천종은 1억 원대를 호가한다.
지난해 2월 124년 근으로 감정 받은 천종은 70대 남성 고객이 1억 원에 구입했다. 170년 근 산삼 2뿌리를 포함한 산삼 21뿌리는 7억 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직업적인 심마니는 1000∼2000명 정도. 산삼 관련단체는 한국심마니협회, 한국산삼협회, 한국산삼감정협회 등이 있고 일반인들이 만든 각종 삼산동호회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취미 또는 부업 삼아 산삼을 캐러 다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한국 삼이 세계 최고
삼은 다른 나라에도 있다. 미국 캐나다 등 서양에서 나는 삼은 ‘서양삼’. 중국삼은 ‘삼칠’ 또는 ‘전칠’로 불리고 일본삼은 ‘죽절삼’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려인삼에는 미치지 못한다.
중국 남조의 학자 도홍경은 ‘신농본초경’을 개편한 ‘명의별록’에서 “가장 품질 좋은 인삼은 한국에서 나온다”고 했다. 일본 문헌 ‘별록’에는 “뿌리에 손발과 눈, 코가 있고 생김새가 흡사 사람을 닮아 영묘한 데가 있다”고 적혀 있다.
세계의 수많은 삼 가운데 사람을 닮은 것은 고려인삼 뿐이다. 일본에서는 예로부터 사람처럼 생긴 것일수록, 그리고 남자나 여자의 성기처럼 생긴 것일수록 정력을 돋우는 데 효험이 크다고 해 유난히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고려인삼은 ‘만병통치’ 묘약으로 대접 받았다.
○ 성격 까칠한 산삼
산삼은 자랄 때 무척 까다롭다. 삼의 일부가 상처를 입거나 동물에 의해 먹히면 성장을 멈추고 잠을 잔다. 환경이 적합해질 때까지 몇 년이고 계속 잔다. 삼의 ‘휴면’이다. 그 기간은 6년 이상이며 최고 24년까지 잔다.
심마니들도 산삼을 캐러 입산할 때에는 미리 길일을 정한다. 입산하기에 앞서 3, 5, 7일 등 홀수일 전에는 매일 몇 차례 목욕재계를 하고 부부 간 잠자리도 하지 않는다. 입산 전까지 개나 닭 등을 살생하지 않는 것은 물론 네 다리 달린 짐승을 먹지 않고 동물의 시체나 죽은 사람의 관도 피한다.
삼을 캘 때도 공을 들여야 한다. 실오라기만 한 뿌리 1개라도 다치지 않게끔 캐야 한다. 다친 삼은 삼이 놀랐다고 해 ‘경삼(驚蔘)’이라고 부르며 그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진다.
○ 뇌두(머리)를 보면 안다
삼은 눈으로 봤을 때 흠집이나 찍힌 부분이 없어야 하고 껍질이 매끄러워야 한다. 뇌두 부분과 목체, 뿌리 부분이 균일하게 자란 것이 우수한 삼이다. 전체적으로도 색깔이 균일하며 표피가 갈라지지 않고 뿌리 표피가 붉게 변하는 ‘적변 현상’이 없는 것이 품질이 좋다.
또한 잔뿌리가 손상되지 않고 깨끗한 흙이 붙어 있어야 품질뿐만 아니라 보관상으로도 우수한 삼이라 할 수 있다. 흙이 묻어 있지 않거나, 흙 없이 물을 뿌려 물때가 묻어 있는 인삼은 오래된 인삼이다. 뇌두가 없거나 상처를 입어 망가진 ‘파삼’인 경우가 많다. 백삼이나 홍삼은 검사필증이 있는 것이어야 믿을 수 있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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