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98년이 지난 2003년. 전설의 군함을 찾아 잠수정을 타고 울릉도 앞바다 심해 계곡으로 향했다. 수심 120m를 통과하자 암흑세계가 펼쳐졌다. 절벽 아래로 수직 하강했다. 지옥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수온이 영하에 가까워 소름이 끼쳤다. 수심 600m. 조명등 반경 1m에 해저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암반과 진흙뿐 생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쿵! 잠수정이 바닥에 내려앉으면서 프로펠러가 흩어 놓은 진흙 때문에 순식간에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혼탁해졌다. 이럴 때는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15분 정도 조명을 모두 끄고 대기해야 한다. 절대 암흑, 절대 고독이다.
잠수정을 앞으로 서서히 이동시켰다. 오랫동안 부식된 선박의 잔해들이 널려 있었다. 긴장감 속에서 수색을 계속했다.
갑자기 거대한 침몰선이 앞을 가로막았다. 뱃머리를 계곡 쪽으로 향한 채 언제든지 블라디보스토크로 갈 태세였다. 부식으로 형체가 많이 훼손됐지만 함포에서는 당장이라도 포성이 울릴 것 같은 위용! 숨이 막혀 왔다. 마침내 돈스코이호와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발견 소식을 지상에 알려야 했다.
수중음파통신기를 가동 하는 순간, 잠수정의 모든 전원시스템이 정지됐다. 아마 누전차단장치가 잘못 작동한 것일 게다. 산소 공급장치마저 가동을 멈췄다. 이산화탄소가 급격히 축적됐고 곧 위험수치를 넘기 시작했다. 비상사태다. 즉각 전속력으로 수면을 향해 치솟았다. 살아야 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휴대용 비상 호흡장치를 찾아냈다.
30분 남짓 흘렀을까. 잠수정 해치를 박차고 나와 자연의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살아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돈스코이호 발견의 기쁨까지 더해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심해 난파선 탐사는 첨단 해양과학기술 없이는 불가능하다. 평탄한 해저에 있는 타이타닉호에 비해 돈스코이호는 계곡 중턱에 걸쳐 있어 탐사가 더 어려운데도 독자적인 기술로 성공한 것은 우리 기술이 선진국과 대등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 쾌거다. 올해가 가기 전에 돈스코이호에 한 번 더 다녀올 참이다.
유해수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자원연구본부 책임연구원
hsyoo@kor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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