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하임숙]‘불법’ 아니면 할 수 없는 신약 임상시험

  • 입력 2007년 6월 11일 03시 04분


지난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미국암학회에서 마땅한 치료제가 없었던 말기 간암과 뇌종양에 효과가 있는 약들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지만 한국 의사들은 한숨을 지었다. 한국에선 이 약들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암처럼 생명을 위협하는 병의 치료제는 시판 허가 이전에 환자들이 써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현행법은 동정적 사용승인 프로그램(Expanded Access Program)과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을 인정하고 있다.

동정적 사용승인 프로그램은 신약을 대안이 없는 환자들에게 써 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몇 년 전 폐암 치료제 ‘이레사’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에 이 프로그램을 시판 허가 이전에 승인해 많은 환자를 살릴 수 있었다.

연구자 주도 임상시험은 의사가 약의 용량과 방식을 결정해 환자들에게 처방하는 제도다. 의사들은 치료약이 없는 질병에 대해 연구 단계의 약을 처방하기도 한다. 제약사는 의사와 소속기관의 역량을 판단해 약을 무료 지원한다.

한 의사는 “다국적 제약회사가 약을 무료로 제공한 이후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항암제를 복용하면 구토, 손발 물집 등 부작용이 생기는 환자가 많다. 이럴 때는 항생제 등을 처방해야 하지만 현행 규정상 이 비용을 건강보험이나 환자가 부담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다. 의사들은 “다국적 제약사들은 새 허가를 받기 위한 연구가 아니면 자금을 대지 않는다”면서 “의사가 호주머니를 털지 않으면 효과가 어느 정도 입증된 새 치료제를 처방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이 이런 부대비용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과는 딴판이다. 한국 의사들은 부대비용을 건강보험에 청구하는 ‘불법’을 저지르기도 하면서 연구하고 있다. 한 의사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낡은 법규를 바꿔 달라고 여러 차례 호소했지만 정부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말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마땅한 치료제가 없는 환자들이 어느 정도 효과가 인정되고 있는 약을 적절히 쓸 수 있고 의사들은 이를 통해 치료 경험을 쌓으며 연구할 수 있도록 의료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말기 암 환자의 절박함과 의사의 연구 의욕을 한꺼번에 무시하는 법 조항은 사라져야 한다.

하임숙 교육생활부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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