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전문가는 “설계수명이 다 했다고 해서 실제 수명이 끝난 것은 아니다. 원전을 지을 때 갖다 부은 콘크리트가 30년 전의 것이지, 시스템은 새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한다. “엔진만 괜찮다면 자동차처럼 부품을 새것으로 교환해 계속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열탕에서 냉탕으로 갑자기 가면
계속운전의 여부는 역시 엔진(원자로)에 달려 있다. 고리 1호기에 대한 계속운전 심사를 맡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은 112개 항목 가운데 원자로에 대한 ‘가압열충격’을 가장 핵심적인 항목으로 보고 있다.
가압열충격이란 뜨거운 원자로 용기를 냉각시킬 때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펄펄 끓는 물을 담았던 유리컵에 차가운 얼음물을 갑자기 부으면 ‘쩍’하는 소리를 내며 금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
섭씨 300도에 이르는 뜨거운 물이 흐르는 원자로 용기에 20∼30도밖에 되지 않는 찬물이 스며들어가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물론 가능성은 아주 낮다. 동시에 발생하기 어려운 온갖 실수와 사고가 겹쳐야 하는 확률 때문이다.
확률이 아무리 낮더라도 가압열충격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원자로 용기가 중성자에 오랜 시간 부딪치면서 원자 배열이 조금씩 흐트러져 용기가 삭아들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차가운 물이 닿으면 원자로 내벽에 부담이 생겨 금이 가거나 금이 커질 수 있다. 내부 압력까지 높다면 정도는 더 심해진다.
한국원자력학회는 1998년 이 문제를 집중 제기했다. 가장 오래된 원전인 고리 1호기가 가장 많은 중성자에 ‘두들겨 맞을’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가압열충격에 대한 ‘맷집’이 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운전원 실수까지 겹친다면
이 문제를 분석하고 있는 원자력학계는 조심스럽게 낙관론을 편다. “고리 1호기가 가압열충격을 감안해 설계되진 않았지만, 이를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으로 본다”는 것.
한국과학기술원 원자력공학과 장창희 교수는 “보통 필요한 안전 수준보다 5배 높은 대비책을 세우는 게 원전의 일반적인 설계 방향”이라며 “고리 1호기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장인순 고문도 “세계적으로 400기 정도의 원전이 가압열충격을 설계에 반영하지 않았다”며 “조심해서 운전하면 아무 문제없이 운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이 가압열충격 외에 원자로가 중성자 때문에 얼마나 삭았는지, 뜨거운 온도에서 움직이는 금속부품들이 아직 튼튼한지, 원자로 배관은 부스러지지 않았는지 하는 항목을 종합 점검하여 결과를 보고하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올해 말쯤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미국에서는 올해 2월까지 총 48기의 원전이 계속운전 승인을 얻었다. 폐기된 원전 28기는 대부분 기술적인 결함이 아니라 경제성이 낮아 폐쇄된 것이다. 일본은 이미 12기의 원전을 30년 이상 가동하고 있다. 영국(10기)과 캐나다(2기)도 30년 이상 운전 중인 원전을 보유하고 있으며 원전을 운영하는 나라 대다수가 계속운전을 검토하고 있다.
한편에서는 1978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란초세코 원전에서 일어난 가압열충격 사고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운전원의 실수도 막을 대비책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고장난 계기반을 본 운전원이 원자로에 냉각수를 쏟아 부은 이 사건이 시스템적인 안전망의 필요성을 보여 준 사례라는 것이다. 장창희 교수는 1998년 고리 원전을 주제로 열린 원자력학회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유사한 상황에 대비한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정호 동아사이언스 기자 sunri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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