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만 후 어깨에서 팔로 내려오는 신경이 마비돼 팔을 들 수 없게 된 딸 때문에 소송을 제기했던 김제모(65) 씨. 그는 같은 병원을 상대로 똑같은 소송을 냈던 사람을 만난 뒤 분통을 삭일 수 없었다. 자신의 딸은 향후 치료비가 5000만 원 나왔는데 그 사람의 딸은 1억 원이 나왔기 때문이다.
김 씨는 “두 배 차이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의료소송을 하다 보면 의료과실을 인정하는 기준과 그에 따른 손해배상 기준이 있는지 의문이 든다.
거의 동일한 사안에서도 서울의 법원에서 재판을 받느냐, 아니면 지방의 법원에서 재판을 받느냐에 따라 의료과실 인정 범위와 손해배상액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법원에서도 어떤 판사가 재판을 하느냐에 따라 그 기준이 다른 예도 있다.
또 손해배상액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장애율과 향후 치료비, 개호(간병인)비 등에 대한 평가가 의료기관마다 다르다.
물론 장애판정은 의사, 재판은 판사 개인이 하는 것이므로 어느 정도는 재량이 인정될 수 있다.
하지만 일정한 기준 없이 이뤄진 재판 결과에 당사자들은 승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분명 의료기관이나 재판부에 외부의 ‘입김’이 작용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란 문구를 떠올릴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누군가 의료소송을 제기하려고 할 때 재판 대신 의료기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조언할지도 모른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의료소송의 기준을 만드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우선 법조인과 의료인 등 전문가들이 모여 환자에 대한 장애판정의 기준부터 정립해야 한다. 또한 의료과실의 인정 기준과 배상 범위에 대해 일정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형사사건에서 양형 기준을 만든 것처럼.
일정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선 의료소송 관련 자료가 충분히 축적돼야 한다. 이를 위해 사법부는 의료소송의 판결문과 장애판정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 이런 노력들은 의료소송을 줄이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신헌준 j00n3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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