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제생물바코드협력체 가입
유전자는 4가지(A, T, G, C) 염기로 이뤄져 있다. 생물의 전체 유전자 가운데 염기의 수나 배열 순서가 같은 종끼리는 거의 유사하지만 다른 종과는 뚜렷하게 차이 나는 부위가 있다. 이 부위가 바로 종을 구별하는 단서가 된다. 카스피 해에 사는 철갑상어도 유전자에서 이 부위가 다른 종과 분명히 다르다. 과학자들은 이 부위를 ‘바코드’라고 부른다.
바코드 부위의 염기 수와 배열 순서를 알고 있으면 지구에 사는 모든 동식물을 어떤 종인지 정확하게 판별해 낼 수 있다. 슈퍼마켓에서 계산할 때 상품마다 붙어 있는 바코드로 상품의 종류나 가격 등 매출 관련 정보를 읽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달 17∼20일 캐나다에서 열린 국제생물바코드협력체 콘퍼런스에서 한국은 21번째 국가로 가입했다. 한국 대표로 참가한 서울대 수의대 이항 교수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생물자원센터 김창배 박사는 “2009년부터 5년간 50만 종의 생물 바코드 정보를 구축하는 계획에 우리나라도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식물보다 동물이 먼저
대부분의 동물에서 세포 내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에 들어 있는 한 유전자(COⅠ)가 바코드 역할을 한다.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는 모계로만 유전되기 때문에 부계 유전자와 섞이지 않고 종 내에서 잘 보존되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한국산 조류에서 COⅠ의 염기 수는 서로 다른 종과는 3% 이상 차이가 나지만 같은 종끼리는 1%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김 박사팀은 이미 한국산 조류 150종의 깃털이나 혈액, 새똥에서 유전자를 추출해 각 종의 고유한 COⅠ을 찾아냈고, 이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이 정보는 국제생물바코드협력체의 중앙 데이터베이스에도 등록됐다.
김 박사는 “철새나 물고기처럼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생물의 바코드는 어느 나라가 선점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먼저 등록한 나라가 정보를 관리할 수 있는 주도권을 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동물 이외에 식물이나 균류, 해조류 등의 바코드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동물의 COⅠ처럼 종마다 명확히 구별되는 유전자 부위가 어느 곳인지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국제생물바코드협력체 가입국들은 우선 동물 바코드를 중심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검역, 항공안전, 유통 등 다방면 활용
조류 바코드 데이터베이스는 조류인플루엔자(AI)의 감염 경로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 감염 현장이나 철새 도래지에 떨어져 있는 깃털이나 새똥만으론 그 새가 어떤 종인지 바로 파악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전자를 추출해 바코드 부위(COⅠ)를 찾아낸 다음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면 어떤 새가 왔다 갔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있다.
새는 비행기의 안전을 위협하기도 한다. 새가 프로펠러 속으로 빨려 들어가면 엔진이 망가지고, 비행기에 충돌하면 동체가 찌그러지거나 유리창이 깨진다. 그럼에도 공항이나 공군에서는 어떤 새가 이런 말썽을 일으키는지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동체에 핏자국이나 털이 조금만 남아 있어도 바코드를 읽어내 종을 판별할 수 있다.
바코드로 심지어 국내산과 수입산 한약재까지 가려낼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산 녹용과 외국산 녹용은 사슴의 종이 다르기 때문에 당연히 바코드도 다르다.
현재 유전자 추출부터 종 판별까지 걸리는 기간은 대략 1주일. 국제생물바코드협력체는 이 과정을 몇 분 안에 끝내는 휴대전화 크기의 판독기도 개발할 계획이다. 수입 농수산물에 작은 곤충이 붙어 있을 때 형태만으론 구별이 쉽지 않다. 10년쯤 뒤에는 곤충의 날개를 일부 떼어 판독기에 넣기만 하면 검역이 끝날 것이다. 무슨 곤충인지, 해로운지, 어디 사는지 등의 정보가 곧바로 화면에 뜰 테니 말이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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