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기자의 digi談]악플의 망령, 절대 지울 수 없습니다

  • 입력 2007년 7월 24일 03시 02분


《이번 주부터 ‘김용석 기자의 디지담(digi談)’을 매주 화요일 연재합니다. 디지담은 디지털의 ‘디지(digi)’와 이야기란 뜻의 ‘담(談)’을 합친 말입니다. 이 코너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전자 및 정보기술(IT) 분야의 다양한 주제를 정담을 나누듯 편하게 전하려고 합니다. 다루는 내용은 ‘디지털’이지만 이야기는 ‘아날로그’처럼 따뜻하고 친근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칸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최민식)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간 불법 감금됩니다. 한참 후에야 고교 시절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마디 때문에 친구에게서 복수를 당한 것임을 알게 되죠.

같은 일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기억력은 저마다 다릅니다. 나는 금방 잊어버린 일이 상대의 머릿속에는 평생 남아 두고두고 마음의 상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나의 말과 행동이 상대방의 기억뿐만 아니라 객관적인 기록으로 남는 일이 잦습니다.

영화 속의 오대수는 복수극의 원인이 된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 내기 위해 스스로 ‘악행(惡行)의 자서전’을 적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디지털세상에서는 누구의 악행인지를 밝혀내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8년 동안이나 경쟁회사를 비방하는 ‘악플(악성 댓글)’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최근 발각된 미국의 대형 식품업체 ‘홀푸드’사의 최고경영자(CEO) 존 매케이 씨를 보십시오.

아내의 이름 ‘Deborah’의 철자를 뒤섞은 ‘Rahodeb’이란 필명을 사용했지만 결국 수사 당국에 꼬리가 잡히고 말았죠.

이처럼 인터넷에서의 악행은 고스란히 저장될 뿐만 아니라 접속 기록도 남기 때문에 완벽한 익명을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악행의 관성을 끊기란 쉽지 않은가 봅니다. 이달 들어서 대형 포털 사이트 등에 글이나 사진을 올리려면 신원을 밝혀야 하는 ‘제한적 본인 확인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지만 악플은 여전히 많다고 하더군요.

인터넷상의 명예훼손, 초상권 침해 같은 불법 행위들이 줄지 않는 것도 익명의 가면 뒤로 숨을 수 있다는 생각이 여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악행을 저지르는 분들에게 그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네요.

몇 십 년이 지나 여러분의 자녀들이 인터넷에 떠도는 당신의 악플을 발견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매케이 씨처럼 오래 전의 인터넷 악행이 자신의 인생과 사업을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 내 말과 행동이 어떻게 남겨지고 있는지를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디지털시대의 착하게 사는 법’ 제1조일 것입니다.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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