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모(52·여) 씨는 2년 전부터 오른쪽 입 주위가 찔린 것 같은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통증은 아무 이유 없이 하루에 2, 3회 반복되며 수초간 지속되다가 사라진다.
“멀쩡하다가도 양치질을 하거나 말할 때 갑자기 벼락 치듯이 아파요. 그러다 좀 지나면 거짓말처럼 괜찮아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뜨거운 냄비에 손을 대는 순간 극심한 통증을 느낀다. 통증은 외부에서 위험한 자극이 오면 우리 몸에 위급 상황을 알려주는 경보기 역할을 한다.
그러나 김 씨의 경우처럼 아무런 자극이 없어도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바람이 불거나 옷깃만 살짝 스치는 접촉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또 사고 등으로 팔다리를 절단한 후 그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런 증상은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계에 이상이 생겨서 발생한다. ‘생리적 통증’(해가 되는 자극에 대해 느끼는 통증)과 구별해 ‘신경병증성 통증’이라고 부른다.
○바람 불거나 옷깃만 스쳐도…
김 씨는 ‘삼차 신경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삼차 신경통은 식사를 하거나 양치질, 세수를 할 때 치아 이마 뺨 위턱 아래턱 등의 부위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 것이다.
삼차 신경통은 얼굴 표면의 감각을 담당하는 ‘삼차 신경(12개의 뇌신경 중 제5뇌신경)’이 인접한 혈관의 박동에 자극을 받으면서 일어난다. 통증은 몇 초 또는 몇 분간 지속된다.
삼차 신경통은 일정 기간이 지속되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사라지면 수개월 혹은 수년간 멀쩡한 무통 기간이 찾아온다. 그러나 통증 기간과 무통 기간이 반복될수록 삼차 신경통의 빈도와 강도는 이전보다 심해진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도 비슷한 증상을 보인다. 대상포진은 몸 안에 잠복해 있던 수두 바이러스가 몸의 면역력이 떨어질 때를 틈타 활성화되면서 발진과 수포가 생기는 병이다. 옆구리 가슴 복부 이마 뺨 등에 많이 생기며 목 허리 다리에도 드물게 나타난다. 주로 노인에게 많이 발생한다.
대상포진은 한 달 이내에 낫지만 환자 10명 중 1, 2명은 대상포진 후 신경통에 시달린다. 대상포진이 치료된 후에도 통증이 1∼6개월 동안 계속되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을 의심해 봐야 한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으로 진행되면 그 어떤 진통제로도 만족할 만한 치료 효과를 볼 수 없고 완치도 기대하기 힘들다. 따라서 대상포진 발생 초기부터 예방 차원의 신경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잘려 없어진 발가락이 아파요”
왼쪽 다리를 절단한 조모(40) 씨는 잘려나간 왼쪽 발가락이 몹시 가려운 것 같은 느낌을 호소한다. 때로는 그 부위가 너무 아파 잠을 못 이루기도 한다.
이처럼 사지가 절단된 후 없어진 부위에 통증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이를 ‘환지통’이라고 한다. 오랜 기간 통증을 치료하지 않아 신경이 변성을 일으키고, 통증 유발 부위가 제거된 후에도 허위 통증 정보가 뇌로 전달되면서 발생한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도 통증을 치료하지 않아 신경이 변성·손상되면서 발생한다. 상처가 났던 자리와 관계없이 엉뚱한 곳이 아프기도 한다. 통증이 상처 부위에 머물지 않고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는 것이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특징이다.
소리나 빛 같은 자극에도 통증을 느낄 수 있으며, 예리한 칼로 베이는 듯한 통증,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지속적 또는 간헐적으로 나타난다.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을 차단하라
신경병증성 통증은 약물치료와 함께 신경치료를 받아야 한다. 신경치료의 종류는 다양하며 환자의 상태와 통증의 양상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선택해야 한다.
신경치료에는 신경차단술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신경차단술은 통증을 전달하는 신경에 주사기로 약물을 주입해 신경을 마비시켜 통증이 전달되는 것을 막아 버리는 방법이다.
삼차 신경통의 경우 신경외과에서는 뇌혈관의 신경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뇌혈관과 신경을 떼어 주는 ‘미세혈관 감압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대상포진 후 신경통과 환지통은 예방할 수도 있다. 조기에 신경치료와 항바이러스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면 대상포진이 신경통으로 진행하는 것을 줄일 수 있다. 환지통 역시 통증치료를 먼저 하고 난 후 절단수술을 하면 발생하지 않는다.
(도움말=김찬 아주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 이정교 서울아산병원 신경외과 교수)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